[2015년 결산⑦] 지자체 ‘유사중복 복지 구조조정’ 어떻게 맞설까
인터뷰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에게 길을 묻다



2015년은 그야말로 ‘복지의 겨울’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으키는 매서운 ‘복지 구조조정’ 칼바람에 애꿎은 지자체 복지사업들이 ‘살생부’에 올랐다. 소소하게나마 지역의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을 지탱해 주던 이 복지사업들은 하루 아침에 ‘복지 포퓰리즘’, ‘재정 누수 주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또한, 한 때 ‘박근혜 복지법’으로 세간의 찬사를 받기도 했던 사회보장기본법에 규정된 사회보장위원회는, 2015년에는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유사’, ‘중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주차요원으로 활동했다. 완장을 두르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 주차요원들은 당장 차를 빼지 않으면 ‘교부세 삭감’이라는 과태료를 매기겠다고 지자체를 겁박했다.


5년 전, 대권을 노리던 국회의원 박근혜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라고 외쳤을 때, 누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당시는 전국에 무상급식 돌풍이 불어 바야흐로 ‘복지국가’의 열망이 최고조에 오른 때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제 완전히 돌변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이 가진 쥐꼬리만 한 복지마저 빼앗으려 들고 있다.


그러나 흘러간 옛 노래처럼 매년 들려오던 ‘선거로 심판하자’라는 목소리조차 이제는 듣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갈수록 포악해지고 독재적 본성은 더 노골화되고 있지만, 야당은 지리멸렬하게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4월 총선 이후 정부 여당은 더욱 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복지의 숨통을 조이려 들 것이다.


그렇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치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만났다. 복지정책과 재정 전문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그는 이 ‘복지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오 위원장은 복지를 정책적 맥락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따라 정치적으로만 판단하려는 정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앞으로 복지운동진영이 ‘복지정치의 지역화’라는 화두를 꺼내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자체 복지 축소에 맞서 그동안 복지의제에서 주체로 떠오르지 않았던 지역의 ‘잠자는 사자들’이 이제는 깨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지금 이 지역의 ‘사자’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앞으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어려울 것이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비마이너 : 최근 사례에 대한 단상부터 이야기해 보자. 얼마 전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지자체가 ‘복지 남발’ 하는 것은 ‘범죄’라고 말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고위 공무원들을 앉혀놓고 서울시 청년수당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처럼 현 정부의 복지에 대한 본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오건호 : 정부 사업은 어떤 것이든 정책적 의미와 함께 정치적 의미도 갖게 된다. 그런데 사업의 적정성 평가는 먼저 정책적인 부분이 진행된 후에 사후적으로 필요하다면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논란을 보면 거의 즉자적으로 정치적 진영논리가 들어오고 있다. 이 사업이 정책적으로 적절한지, 기존 복지 행정 체계에 어긋나는 점이 있는지를 검토하지 않고 그냥 정치적인 대응만 하고 있다.


이 때 정치적 잣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재원 확충을 위해 지출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출개혁 방안 중 하나가 바로 복지 유사중복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먼저 중앙정부 360개 복지사업에 유사중복이 있나 봤더니 중복사업은 하나도 없고 일부 유사사업으로 ‘추정’되는 복지도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왔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그렇게 나온다. 사실 중앙에서 총괄하는 사업인데 애초에 유사중복이 있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지자체 복지사업을 겨냥하는데, 지자체 복지는 물론 아주 창의적인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앙정부 복지에 대한 보충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이걸 다 유사중복으로 보고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정부에도 유사중복이 꽤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텐데, 막상 까보니까 없으니 지자체를 굉장히 무리하게 압박하는 상황이다.


한편,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 건은 좀 다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위상이 있으니까 그걸 막으려고 하는 거다. 게다가 정치적 상징성이 큰 청년사업이다 보니까 정치적 맥락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박근혜 정부 복지축소, 3단계에 걸쳐 진행... 다음 단계는 ‘무상보육’


비마이너 : 최근의 복지 축소 움직임을 박근혜 정부 초기와 비교해서 보면 하나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취임 직후에는 복지공약을 대대적으로 후퇴시켰고, 작년에는 주로 복지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겠다고 공격에 나섰고, 올해에는 지자체 복지를 겨냥했다. 어떤 면에선 이런 흐름이 하나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건호 : 시나리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맥상통하는 흐름은 사후적으로 확인된다. 박근혜 복지 공약이 시대에 떠밀려 나오기는 했지만, 그걸 감당할 돈도 없고 실제 실행할 의지도 없었다. 그러니 당선되고 나서 뒤집기를 한 것이다. 근데 이 뒤집기가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것 같다.


첫째는 인수위 시절부터 복지공약을 축소 재구성한 것. 예를 들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는 주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3대 비급여 해소 약속한 적 없다거나, 저임금노동자 사회보험료 절반 지원(두루누리사업)을 전액 지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없던 일로 해버리는 것 등. 이게 임기 1년차에 진행됐다.


두 번째는 모든 복지사업이 지방과 중앙 매칭인데, 중앙정부에서 보조금을 제대로 안 주는 것이다. 박근혜 재원공약의 원칙을 보면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것이 첫째, 둘째가 복지 확대에 따라 지자체 추가부담을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깼다. 기초연금을 예로 들면, 박근혜가 애초 약속한 것에서 후퇴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기초연금 총량이 늘어난 부분이 있다. 기초연금 중앙 보조율이 현재 평균 75%인데,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르니 지방에서 책임져야 하는 25%에 해당하는 금액도 오르지 않겠나. 그런데 중앙정부가 이를 책임지지 않았다. 무상보육도 전계층에게 실시하면서 그 책임은 모두 교육청에 떠넘기지 않았나.


세 번째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존에 있는 복지의 구조조정이다. 다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은 공공부조 중심의 취약계층 복지를 공격하는 것이지만, 아직 다음 단계 공격이 남았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무상보육이다. 이걸 선별복지로 바꾸는 작업이 앞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이 흐름의 앞 단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상대적으로 수세적이었다. 왜냐면 공약을 후퇴시키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게 2014년에 법안 형태로 다 마무리됐다. 기초연금법, 맞춤형 기초생활보장법 등. 그렇게 박근혜는 복지공약 축소에 따른 부담을 다 털었다. 그러고 나니까 굉장히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복지를 구조조정 하는 것이다.



지자체 복지 사업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장애인 단체가 국회 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비마이너 :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노선이랄까, 그것의 핵심을 정리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건호 : 명확하게 박근혜의 복지 노선을 꼽기는 어렵다. 선별주의 복지라고 보기도 어렵다. 무상보육, 기초연금 소득 하위 70% 지급이 논란이었는데, 둘 다 보편 혹은 준 보편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아직 이걸 공격하지는 않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복지 총량의 확대는 박근혜 정부에서 꽤 진행되었다. 근데 문제는 이게 박근혜의 농사 결과가 아닌 거지. 그 전에 2010년부터 벌어졌던 보편복지 바람의 결과가 2013년 이후에 결실을 맺은 거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복지는 현재 복지 체제 유지 또는 동결이 목표라고 할 수 있고, 복지 철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저쪽은 ‘맞춤형 복지’와 같은 멋진 말을 꺼내겠지만, 사실상 복지 확대가 불가피한 시대적 요구를 억압하는, 관리주의적 복지이다.

비마이너 : 그런데 이렇게 복지 확대를 막는 움직임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예견됐던 것은 아닐까? 박근혜가 2010년 12월에 내놓은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은 ‘박근혜표 복지’의 밑그림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당시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이미 복지사업을 신설 변경할 때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협의조정을 거쳐야 한다는 안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당시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건호 :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나는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한 협의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 협의를 지자체가 꼭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유권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협의조정에 따르지 않으면 교부금을 삭감한다는 패널티 조항을 넣은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사전에 중앙과 지방이 협의하는 과정 자체는 중립적으로 볼 수 있고, 또 필요하다고 본다. 역으로 협의과정에서 중앙정부가 더 지원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게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대통령제가 박근혜처럼 이상한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 완전 독재가 되듯이, 이 협의조정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시에도 (박근혜의) 사회보장기본법이 크게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여러 사회복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총괄하는 기본 모법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던 터였다. 이걸 박근혜가 선수 친 것이다. 물론 별 내용은 없다. 그저 “이 사람도 복지국가 이야기를 하는 구나”하는 정도로 봤던 것이다.


2010년 12월 당시 박근혜 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제시하며 자신의 복지국가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비마이너 : 이 당시부터 박근혜가 ‘맞춤형 복지’, ‘생애주기별 복지’ 같은 슬로건을 내걸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오건호 : 선언적이고 당위적인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다들 ‘이름 참 잘 지었다’ 또는 ‘저거 원래 우리건데’ 라는 반응이었다. 조금 시니컬한 반응은 ‘복지가 원래 맞춤형 아니냐’는 것 정도? 저 쪽이 카피를 잘 뽑았다.


나는 ‘맞춤형’이라는 용어가 복지를 대중적으로 잘 이해하도록 해주는 아주 매력적인 용어라고 본다. 여기서 추가적인 컨텐츠를 찾자면 “‘지속가능한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 영역이 중심이 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하고 아주 중요한 것이다. 스웨덴 식으로, 현금보다는 서비스 중심으로 가야한다. 사회서비스는 현물이기 때문에 관계가 들어가고, 여기에 굉장히 공익적 가치와 공공적 주체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런 식으로 사회서비스 중심, 맞춤형 복지, 한국형 복지국가, 그리고 사회보장기본법까지, 이런 에이스들만 뽑아서 화려하게 만들었으니 용어 자체만 보면 꼬투리 잡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저 쪽이 정말 탁월하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는 것을 보니까 맞춤형 복지를 하는 게 아니고, 각 영역별로 ‘맞춤형 통제, 심지어 맞춤형 삭감’을 하고 있는 거다.

 


지난 5년 간 복지운동 진영, 보편적 복지 위한 재정확충 대안 제시 실패


비마이너 :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오세훈이 패배하고 이후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보편적 복지 진영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내리신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판정승했던 쪽이 이제는 ‘역전패’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부터 지금까지 5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왜 이렇게 ‘보편적 복지 운동’ 진영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면?


오건호 : 2012년 대선 전까지는 새누리당 조차도 준 보편복지를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갔다. 그 전에는 복지 포퓰리즘, 복지하면 나라 망한다, 이렇게 말하다가. 무상보육, 기초연금, 고교 무상교육, 이런 무상시리즈를 박근혜도 받아들였다. 담론 전쟁에서 보편복지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사실 2012년 초까지만 해도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있었다. 일부 원로 학자들은 ‘2013년 체제’라는 말까지 하면서, 87년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룬 시기라면, 2013년부터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따라서 2012년 대선에 대해서도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왜 대선에서 지고 나니까 보편복지 진영이 담론 싸움에서까지 밀린 것일까? 보편복지는 복지확대에 따른 재정 확충을 필요로 한다. 박근혜가 재정 확충 하지 않더라도, 보편복지 진영이 ‘이렇게 하면 재정 확충된다’는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야권, 특히 문재인 후보가 대표적인데 복지공약은 좀 있었지만 재정공약은 지극히 빈약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복지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국에서 재정확충은 굉장히 어렵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복지를 더 늘릴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심지어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에 대해서도 여론조사를 보면 '불가피하다'는 응답도 나온다. 돈이 없다는데 굳이 무상급식을 강행하는 게 고집스러운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고민이 생기는 거다. 


지금 친복지세력에서 무엇을 하자고 공세적으로 내거는 의제를 찾기 어렵다. 박근혜의 무엇을 저지하자고 싸울 뿐이다. 하지만 총선, 대선에서도 ‘저지하자’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우리가 침체되어 있는 이유는 복지예산 확충에 대해서 의미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마이너 : 그럼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지자체 복지에 대한 칼질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저항하는 흐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에서도 서울시와 성남시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무언가가 없고, 시민사회에서도 복지수호공대위가 꾸려지긴 했지만 조직화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공대위 기자회견에 가 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항상 절반은 차지하고, 그 외엔 거의 없다시피 한다.


오건호 : 의제의 위상에 비해 대응 강도가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초입 단계라고 본다. 지자체장들도 눈치 보며 이걸 받을까 말까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태인데, 실제로 이게 삭감된다면 지역에서 어떤 대응이 나올지는 좀 다르다고 본다.


옛날에 복지쟁점은 중앙에서 여야 정치권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몇몇 엔지오(NGO)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복지의제가 지역으로 가 본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복지수호공대위에 참여한 곳을 보면 중앙정부와 뭘 해본 경험이 없는 곳들이다. 참여연대가 간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의 조그만 단체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다. 색다른 경험이다. 나는 이것을 ‘복지정치의 지역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정부가 지역에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이다. 


기존 중앙정치의 눈으로 보면 역동성이 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길게 보면 새로운 주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복지 삭감이 실제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복지확대의 실질적인 문제의식을 갖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2010년을 되돌아보면, 무상급식도 의제 자체로만 보면 큰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청난 복지 에너지를 가져온 것처럼, 지자체 복지 삭감 문제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건강한 복지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주민을 각성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체장들도 그에 조응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이후 총, 대선에서 정치적으로 점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복지정치의 지역화, “지역에 잠자는 사자들이여, 일어나라!”


비마이너 : “지역에 잠자는 사자를 건드렸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잠자고 있는 것이 사자가 아니라 고양이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장애인단체의 경우 그나마 전국적인 조직력이 있어서 지역의 활동보조서비스 삭감 움직임이 있을 때 시청을 점거하는 직접행동을 해서 막아내기라도 하는데, 그런 조직적 힘이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독거노인 같은 집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오건호 : 그런 취약계층의 조직화는 미약한 게 사실이다. 여러 특성상 앞으로 당사자 조직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취약계층은 마을 의제, 지역 의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지역의 마을 만들기,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같은 움직임이 이런 의제에 결합해야 한다. 따라서 이게 사자가 될지 토끼가 될지 고양이가 될지 아직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이들을 사자로 만드는 게 중요한 임무다. 또한, 지금 지역복지정치가 이들을 사자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어려울 것이다.


비마이너 : 그렇다면 당장 코앞에 닥친 총선에서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오건호 : 크게 보면 지역 복지 의제와 전국 복지 의제가 있겠다. 우선 지역 의제를 보면, 각 지자체는 유사중복 통폐합 목록을 1월 중순까지 중앙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지자체는 그 때까지 계속 눈치를 볼 것이다. 그런 지자체장을 압박하면서, 지역 맞춤형으로 ‘마을 복지 지키기’와 같은 지역 친화적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국 차원에서 보면, 그 전에는 급식, 보육, 기초연금 같은 것이 전국적인 복지 바람을 이끌어왔다. 모두 '양적 확대'에 집중한 의제이다. 이제는 '구조 개혁'을 전면에 내걸어야 할 때다. 단순히 양을 늘리자는 요구는 재정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대개혁’ 같은 의제는 어떨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정의로운 개혁, 주치의제도 도입을 포함한 의료전달체계 혁신, 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서라도 병원비 걱정을 없애는 건강보험하나로 등을 총괄한 '병원비 제로 프로젝트'다. 이를 촉발하는 계기를 지혜롭게 기획하자. 만약 박근혜정부가 계속 방치한다면, 건보 부과체계 개혁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총선 공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공론화를 위해선 주치의가 좋은 소재다. 사람들이 주치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 확대도 '어린이 병원비 국가 책임' 처럼 구체적 요구로 다듬었으면 좋겠다. 마침 지금 건강보험에 17조원이라는 흑자분이 있으니 이걸 적절하게 활용하면 보장성의 획기적 확대가 가능하다.


솔직히 박근혜 정부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왜 빨리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주 극소수 상위계층 보험료 올리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데, 정권이 조금이라도 여론에서 밀리면 개편안을 냈을 것이다. 왜냐면 이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하기 싫을 정도로 배가 부른 거다. 박근혜가 안하면 야당이라도 먼저 안을 내놓고 움직여야 하는데, 야당은 정부가 하면 비판만 하겠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1990년대에 대대적인 의료보험 통합운동이 있었고, 그 성과로 2000년에 지역과 직장의 급여를 단일하게 묶는 의보통합을 이뤘다. 내가 볼 때는 우리나라 복지운동에서 실제 대중운동의 힘으로 얻어낸 성과는 이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 면에서 제2의 건강보험 대개혁 운동이 필요하다. 보험료 부과체계를 정의롭게 개선하고 나도 주치의를 가지면서 민간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으로 모든 국민의 병원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이다. 아직 사람들이 그래도 건강보험은 신뢰를 하기 때문에 복지를 확장하는 전국적 의제로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잡아야 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도 총선을 앞두고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이런 지역과 중앙의 의제를 중심으로 잡고 가자고 제안하고 논의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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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