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열악한 처우는 사회 복지의 미덕이 아니다



양혜정 사회 복지사




"어떤 일 하세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가장 많이 주고받는 질문입니다. 

"사회 복지사입니다.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일합니다."

나는 대답합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 되돌아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대단하시네요."  

13년 동안 사회 복지 현장에서 일해 온 나에게 익숙한 반응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사회 복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대화가 불편합니다. 살짝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이 말을 들어야 하는지 한숨도 나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가 불편한 이유 

사회 복지사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 복지사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회 복지의 목적이 '정의 구현'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회 복지사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때로는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요받습니다. 과연 좋은 일과 옳은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령 사회 복지 현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원 배분에는 원칙이 존재합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 가장 긴급한 사람이 우선이 됩니다. 당연히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했으니 자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 사람에게 사회 복지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심한 항의를 받기도 하고, 욕설이나 험담을 듣기도 합니다. 사회 복지사는 옳은 일을 한 것일까요? 좋은 일을 한 것일까요?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 복지사는 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원칙대로 일을 했어도 사회 복지사는 사과하고, 또 사과합니다. 유사한 일이 반복되면 자원을 작게 쪼개어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기도 합니다. 순위가 되지 않았더라도 불평이 많고, 힘든 고객에게 자원을 배분합니다. 사회 복지사는 옳은 일을 한 것일까요? 좋은 일을 한 것일까요?

상황이 반복되면 사회 복지사는 옳은 일과 좋은 일을 구분하기 힘들어집니다. 차라리 원칙을 버리고 목소리 큰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면 내가 더 편해지는 일도 많습니다. 욕도 덜 먹습니다. 보조금으로 운영되어 민원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회 복지 기관의 골칫거리도 줄어듭니다. 

만일 원칙을 벗어난 기관이나 동료에게 이의를 제기한다면 혼자만 잘난 척하는 말 안 듣는 사회 복지사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회 복지사는 점점 침묵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불평 많은 고객에게, 기관 이미지를 중시하는 관리자에게, 편하게 일하고 싶은 동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 2013년 3월 29일 국회 헌정 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사회 복지사의 날 기념식에서 한 사회 복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사회 복지사들을 추모하는 추도사를 듣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13년 들어 이때까지만 3명의 사회 복지 담당 공무원이 '근무하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합뉴스

  
장애인 복지 현장을 떠나는 사회 복지사 

사회 복지사의 노동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나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만 11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수용 시설로도 불리던 곳으로 중증 장애로 24시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용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회 복지사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낮 4시경 아홉 명의 여성 장애인이 좌식 테이블에 둘러앉아 과일을 먹고 있습니다. 역시 여성인 사회 복지사 한 명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낮 동안에는 사회 복지사 두 명이 장애인 열 명을 지원하지만 오늘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장애인 한 명이 미용실에 가야 해 사회 복지사 한 명이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사회 복지사는 평소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세 명은 잘 씹지 못해 과일을 잘게 잘라주어야 하고, 한 명은 먹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간식을 잘 먹던 A 씨가 갑자기 간식을 더 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안타깝게도 초고도 비만인 A 씨에게 간식을 더 줄 수는 없습니다. 더 살이 찌면 위험하기도 하고,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소리를 지르던 A 씨는 벌떡 일어나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놀란 사회 복지사가 달려가 A 씨를 막아서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소리칩니다. 10분이나 이 상황이 계속되고서야 조용해집니다. 다행히 장애인 중에 맞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 복지사의 목걸이는 끊어지고, 목에는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남았습니다. 손목은 심하게 꺾여 통증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어 통증이 남아 있던 손목입니다.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팀장이 달려가 사회 복지사에게 괜찮으냐고 묻습니다. 사회 복지사가 대답합니다. "괜찮아요. 다행히 다른 분들이 안 맞았어요." 둘이 마주 보고 씁쓸하게 웃습니다. 만약 사회 복지사가 아닌 다른 장애인들이 맞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관리자나 부모님들에게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질책을 듣게 되고 사회 복지사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합니다. 막을 수 없었다는 말은 핑계라고 치부 당하기 쉽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자주 생기는 일입니다. 견디다 못한 사회 복지사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상사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거의 같습니다. "예전에는 더 했어.", "힘든 거 알지,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사회 복지사 마인드가 부족해." 결국 직장을 떠나는 사회 복지사가 생깁니다. 2015년도 한해에만 장애인들을 직접 지원하는 사회 복지사 17명 중 8명이 그만뒀습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 

장애인 거주 시설의 인력 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 하면 사회 복지사가 본인들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사람으로 몰리기 쉽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서비스의 질과 요구 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직원의 수는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모든 사회 복지사가 참고만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5년 발달 장애인(지적 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거주 시설에도 인력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직장도 해당이 되었기에 협회에 의견서를 정성 들여 써냈습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차에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협회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려고 발달 장애인 시설 관리자들에게 협조를 구했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기관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열악한 처우를 견뎌내는 것이 사회 복지사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같은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들이고 상사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화가 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사회 복지사로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직접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지원하는 장애인에게 맞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일을 하는 동료들을 마주쳐야 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우리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사회와 마주쳐야 합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가 뜻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다수의 반응은 냉소적입니다. "그게 되겠어?", "그러면 좋지만, 말하는 사람만 찍히지.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이렇게 주어진 현실에 순응해 나가는 사회 복지사가 또 만들어집니다. 그 사람의 경력이 10년이 되고, 20년이 되면 후배에게 순응할 것을 강요합니다.

나는 사회 복지사가 좋은 일과 착함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 복지사를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착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거둬지길 바랍니다. 사회 복지사들이 옳지 않을 일에 당당히 맞서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행복하게 일할 때 고객들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나는 옳은 일을 하는 행복한 사회 복지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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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