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부정 수급자 괴담 만드는 영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

 

 

 

이한나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 박사 과정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복지 시스템 변두리에 위치한 다니엘 블레이크와 주변인의 삶과 저항을 다룬다. 201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근래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다니엘 블레이크와 영국의 장애인 복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캐슬의 잡센터 플러스(Jobcentre Plus, 영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고용지원기관)의 매니저가 '영화와 실제는 다르다'며 영화가 과장되었다고 비판하기는 했다. 그러나 '긴축 재정과 복지 재정 축소'는 2010년 보수당-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 수립 이후 명백히 지속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2015년 5월 보수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한 후에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에 장애인들은 '비합리적이나 엄격한 노동 능력 판정을 통한 수급권 탈락과 급여 삭감'을 가혹하게 당하고 있다.  

영국에서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현금 급여로 '개인 자립 수당(PIP : Personal Independent Payment)'과 '고용 지원 수당(ESA : Employment and Support Allowance)'이 있다. 개인 자립 수당은 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한 추가 지출을 보전하는 급여이며, 고용 지원 수당는 같은 사유에서 노동력의 상실로 발생한 소득 손실을 보전하는 급여다.

개인 자립 수당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장애로 인한 추가 지출을 보전하는 현금 급여가 장애 수당(DLA : Disability Living Allowance)이었다. 2010년, 영국 정부는 장애 수당을 개인 자립 수당으로 전환하기로 정했고 2013년부터 이를 실행에 옮겨 현재는 두 수당이 과도기적으로 함께 운영되고 있다.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중증 장애인도 계속 재평가를 받아라! 

장애 수당에서 개인 자립 수당으로 전환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정기적인 재평가'이다. 장애 수당은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중증 손상을 입은 수급자의 경우 기한 없이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개인 자립 수당에서는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기적인 재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재평가는 손상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 사람도 대상으로 삼는다. 그 자체로 수치심을 유발하고 권리가 아닌 시혜적 복지의 모습을 띤다.  

더 큰 문제는 재평가에 따라 기존의 장애 수당 수급자가 개인 자립 수당 수급에서 탈락하거나 급여가 삭감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왜곡되어 있던 자원 배분의 합리적 조정이라면 마뜩잖아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만, 과연 그럴까?

장애 운동가들은 개인 자립 수당이 '장애인에게 재앙과 공포',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처벌이나 마찬가지'라며 끊임없이 비판한다. 실제 '전문성 없는 평가자'에 의해 '형식적이고 허술하며 부적절한 재평가'가 진행된 후에 터무니없이 급여가 삭감되거나 재활 보조 기구나 이동 수단이 압류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언론에 등장한다.

정신 장애는 '진짜 장애'가 아니다? 

정신 장애인의 현실은 더욱 어둡다. 지난 2월, 영국 의회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개인 자립 수당을 받을 경우 이동성 항목(mobility component)을 적용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이는 불과 전달에 있었던 '심한 불안 등 심리적 문제로 이동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과 같이 개인 자립 수당의 이동성 항목(mobility component)을 적용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총리 직속 정책 자문 기구인 '10번가 정책단(Number 10 Policy Unit)'의 책임자인 조지 프리만은 법의 개정 과정에서 '불안 때문에 집에서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현 정부가 불안 장애를 '진짜 장애'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이야기다. 실제로 극심한 우울이나 불안 장애는 '노동이 불가능한 장애'로 인정되지 않아, 이러한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 수급 신청에서 탈락하거나 급여가 삭감되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보도되었다.

정신장애인은 재평가 과정에서도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나아가 존엄성을 훼손하는 질문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장애인 학대/성폭력 생존자 지원단체인 '장애 생존자 연대(Disabled Survivors Unite : DSU)'의 공동 설립자인 앨리스 커비는 개인 자립 수당 재평가 과정에서 '왜 아직 자살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트위터를 통해 폭로하였다. 이 충격적인 내용에 많은 장애인이 같거나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고 줄을 이어 호응한 사건은 급여신청 및 인정 과정에서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정 수급자 괴담 만들어내는 정책 입안자들 

장애인의 소득 손실을 보전해 주는 고용 지원 수당 급여도 큰 폭으로 삭감되었다. 고용 지원 수당은 수급권자를 상대적으로 기능이 좋은 '근로 가능 집단(Wrag : Work-related activity group; )'과 기능이 어려운 '보호 집단(Support group)'으로 구분하는데, 근로 가능 집단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4월부터 30% 가량 줄어든 급여를 받는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정책 입안자는 '급여의 삭감이 수급자의 노동 동기를 고취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 운동가들은 '고용 지원 수당 수급자는 노동 동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비판한다. 중앙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프란시스 라이언은 "정부 정책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과 서비스가 아니라 노동 의욕과 동기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라이언은 또한 정부가 '부정 수급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신화'를 퍼뜨려 재평가와 급여의 축소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최신 디자이너의 핸드백 만드는 지체 장애인', '국가에서 공짜 승용차를 받은 실업자'와 같은 도시 괴담 수준의 부정 수급자 신화가 실제 정책 입안자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2015년 7월, 당시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5년간 누계 460억 파운드의 사회 보장 지출을 삭감하는 계획을 발표하며 '노인, 취약계층, 장애인을 위한 사회 보장이라는 원칙 하에서',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고 급여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 복지 개혁의 원칙은 '복지 시스템의 납세자들이 영위할 수 없는 생활 방식은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성실한 납세자'와 '국민 세금으로 놀고 먹는 수급자'의 대립 구도를 만든다. 도시 괴담처럼 떠도는 부정 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노동 능력이 있는 수급자를 솎아내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원조할 가치를 기준으로 빈민을 구분하던 전근대적 복지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5월 9일, '박근혜 정부의 장애인 복지'를 넘어서자 

이런 상황은 한국도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지속적으로 복지 축소 정책을 펴왔다. 이러한 흐름은 장애인 복지에도 적용되었다. 복지 누수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용자들과 활동 보조인의 부정 수급을 찾아낸다며 불법적으로 복지 수급자들을 감시했다. 중증 장애인에 대한 24시간 활동 지원 서비스 중단과 신규 대상자 지원 중단 등의 가시적인 피해도 장애인 전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심지어 작년 가을 박근혜 정부는 '활동 지원과 연금 등 장애인 자립 지원 예산의 실질적 삭감'을 골자로 하는 2017년 장애인 복지 예산안을 제출했다. 당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애인 연금' 예산은 작년 추가경정예산 대비 34억9000만 원이 감액됐다. 다행히 장애인과 야당의 반발로 본회의에서 예산이 증액되었지만, 당시 정부가 내세운 근거가 놀랍다. '장애인 연금 신규 신청자가 감소 추세인데다 장애 정도 확인 조사를 더 자주 시행하면 연금 수급 탈락자가 증가하여 수급자가 감소할 것'이라니. '확인 조사를 통한 수급자 감소'는 재평가를 통해 수급자를 줄이고 수급액을 삭감하고 있는 영국의 상황이 진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영국의 복지개혁 과정에서 수급권 상실 등으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웹사이트(http://calumslist.org)에는 60명의 사람이 기록되어 있다. 이 60명은 동일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일부일 뿐이다. "복지 개혁이 사람을 죽인다" 는 구호는 결코 과장이 아니며, 지금 한국의 현실과 상관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5월 9일 대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될 차기 정부가 지금 영국의 현실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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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