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세상]백년 뒤 사극의 주제는 무얼까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텔레비전 사극을 보다 보면 쉽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분 차별에서 오는 갈등.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눈물나는 싸움은 신분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과 반죽되어 시청자를 분노하게도 하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극은 대개 이런 구조를 뼈대로 삼고 거기에 밑바닥 출신 주인공의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막장 요소를 적절하게 비벼 시청자의 밤 시간을 장악한다.

만일 신분 차별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극이 이만큼의 안정된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난 우리로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종놈으로, 백정으로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신분 사회에 대해 예외 없이 옳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신분 질서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극은 이 점에서 매우 강력한 감정이입 장치를 우리 현실로부터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를 다룰 미래의 사극에는 무엇을 담게 될까? 출생의 비밀에 뒤덮인 채 무너지는 가족제도? 있는 집안의 자녀 결혼 반대? 아무리 맞아도 결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18 대 1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현대인의 괴력? 뒤엉킨 불륜과 그보다 곱절은 더 복잡한 원한과 복수의 일상?

 

곰곰이 따져보면 사극이나 현대극이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와 소재는 고만고만하다. 타고나는 신분의 딱지가 눈에 확 띄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점점 신화가 되어 간다. 재산과 학벌로 나누는 신분이 이 사회에서 세습되는 경향을 보이니 말이다.사극의 신분차별이나 현대극의 불륜,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복수, 성공담 등은 모두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 작가들이 보여주려 하는 인간의 모습은 불의와 거짓과 탐욕과 오만에 맞서는 진정성의 힘이다.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진정성을 원하고 진실과 인간다움이 승리하길 바라건만 왜 세상은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나는 우리 정치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라는 조금은 꿈같은 이유를 들고 싶다. 그래서 정치인은 다 그렇고 그런 시정잡배라고 싸잡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지만, 자신의 삶의 환경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인들 사이의 섬세한 차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권한다. 정치는 내 곁의 환경을 바꿔줌으로써 내 삶을 바꿔 준다.

2008년 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다음날이던가, 난 어느 맥주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직장인 한 무리를 봤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평소의 목소리보다 훨씬 컸을 법한 높이로 떠들고 있었는데, 영어였다. 영어로 술주정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 세상이 왔다는 투였다. 주눅들어 있는 어느 부하직원의 표정은 ‘소 왓?(그래서 뭐?)’이었지만, 그이는 막무가내로 혼자 떠벌였다.

정치는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가 어떤 시대정신을, 정책을 내거느냐에 따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와 눈매와 예절이 달라지는 문제다. 그 진정성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가는 노력이야말로 유권자가 세상을 바꾸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속성이 비슷하다 하여 과거와 현대의 신분 차별을 똑같다고 여긴다면 이는 “이 천한 놈과 어찌 겸상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매일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다.

아마도 100년 뒤의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당연한 진정성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그릴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분차별의 벽처럼 진정성의 벽을 넘으려는 현대인의 고뇌가 어떤 소재로 다뤄질지 사뭇 궁금하다.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