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막내를 위한 이불 속 밥 한 그릇



이정민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오래 전에는 귀가가 늦어 저녁 밥상에 앉지 못한 식구가 있으면, 밥 한 그릇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주인의 귀가를 기다렸다.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어도, 돌아오지 않은 가족의 밥그릇은 남아 있었다. 그 식구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올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그릇 밥은 남아 있어야 했다. 그게 가족의 연대이다.


그래도 밥그릇을 남겨두는 이유

연대가 커지면 사회적 제도가 된다. 누구나 언젠가 노인이 되어 노동 시장을 떠난다. 생업이 끊기고 소득이 없어지는 사회적 약자가 된다. 그래서 세대 간의 연대로 세대의 어려움을 분담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지켜주려는 제도가 만들어진다. 그 핵심이 연금이다. 

연대를 약속했다고 모두가 똑같이 기여하지는 않는다. 분담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많이 부담하는 세대와 적게 부담하는 세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른 세대에 비해 동료들이 많은 세대는 적게 부담할 것이며, 다른 세대에 비해 동료들이 적은 세대는 많이 부담해야 한다. 호황기 세대는 부담이 적을 것이고, 불황기 세대는 부담이 클 것이다. 

연금을 수령액에서도 세대 간의 격차가 발생한다. 적게 기여하고 많이 받는 세대와 많이 기여하고 적게 받는 세대의 차이가 생긴다. 인구 수나 경제 상황을 예측하여 불공평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미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혹자는 당장 경제적 곤란을 겪는 노인들이 많으니 이후에 연금기금이 고갈되어 젊은이들에게 보험료를 무리하게 걷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고, 스웨덴이나 독일에서는 연금 기금이 고갈되어 매년 발생하는 연금수요액을 그해 거두는 연금 보험료로 충당하면서도 연금제도가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설령 우리나라에서 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크게 우려할 일은 없다. 당장 인기를 얻고 싶은 정치인이나 이제 곧 연금의 수혜자가 될 중장년층으로서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 세대 간 연대는 어떻게 되는가?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명백한 변화의 추세마저 무시하고 오지 않은 미래 세대의 삶을 방치해도 되는가? 

각종 인구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 고령화 속도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빠른 수준이고, 멀지 않은 시기에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확한 시점이나 액수를 명시할 수는 없으나, 이 상황에서 현행 연금제도를 유지할 경우 2060년을 전후하여 기금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그 시점에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들은 은퇴자의 연금 지급을 위해 현재의 두 배가 넘는 20% 이상의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만약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40%보다 더 많은 금액을 연금으로 지불하려고 한다면 연금 기금은 더 빨리 고갈되고 연도별 부과 방식으로 전환된 보험료율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때마침 호황으로 해당 세대가 여력이 있다면 모를까, 불황으로 소득 자체가 적다면 연금 보험료 부담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다음 세대가 현행 연금제도를 그대로 수용할까? 

게다가 다음 세대의 선의에 연금제도의 존속을 의지하려는 순진한 발상도 문제이다. 설령 미래 세대가 현 세대의 연금 전액을 부담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다고 해도 그 큰 금액을 아무런 반발 없이 순순히 부담해 줄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세대마다 부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연금 보험료 부담이 이전 세대에 비해 두세 배에 이르는 상황을 누구나 '연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고 기금 소모에 관여하지도 않았던 미래 세대에게 연금제도에 애착과 책임을 마냥 요구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러하면 공적 연금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정치적인 시도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흐름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참하면 공적 연금은 크게 휘청거릴 수도 있다. 지금 부재중인 미래 세대가 자신의 몫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고 그 존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늦은 밤, 혼자 벌어 많은 가족들을 부양하는 막내 자식이 야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의 문을 연다. 남은 밥이 없다. 이미 집에 있던 가족들이 다 먹어 버렸다. 이럴 수가 있냐고 화를 내면, '가족의 정'이 중요하니 참아야 한다고 대답하면 괜찮은 걸까? 아마 경제 능력이 있는 막내의 입장에서는 혼자 가출하여 독립 생계를 꾸리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경우 다른 식구가 필요하면 밥을 그 막내에게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식구의 몫을 막내에게 호의로 나누어 주는 것과 별개로, 애초에 막내의 몫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분통이 터진다. 

우리 세대가 연금 기금을 고갈시키고자 한다면, 미래 세대가 제기할 이 질문에 답을 준비하는 것이 먼저이다. '나는 그저 좀 늦게 왔을 뿐인데, 왜 내 밥은 하나도 없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막내를 의식하지 않고 솥에 남은 밥을 모두 긁어먹으려 한다. 막내에게 어떻게 말할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혹시 가족의 연대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한 가정의 사례가 이 대한민국이 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하면 불만스러운 젊은이들이 노인 세대 부양을 거부하고 나설 수 있다. 굳이 연금제도를 놓고 어른들과 다투고 싶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버리고 가출해 버릴지도 모른다. 팔팔한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노인을 직접 부양할 미래 세대가 느낄 박탈감이나 부담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당장 우리 세대가 직접 느끼고 있는 고통도 큰 상황에 굳이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다들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세대의 책임을 자각해야 

이런 판국에, 그 옛날 아무리 힘들어도 늦게 올 막내를 위해 이불 밑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묻어두던 배려를 떠올려 보는 것은 천진한 발상일 뿐일까? 윗사람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집안의 재산을 편한 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한 나라의 어른 세대로서, 다른 방법은 궁리해 보지도 않고, 늦게 올 젊은이들은 아랑곳없이 금고를 다 비워버리려는 편리한 생각을 한다면, 그건 남들 보기 부끄러운 노릇이 아닌가? 



출처 : 프레시안 2017.7.1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3136&ref=nav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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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