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우리는 그렇게 노인이 되었다




_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저 노인네는 나보다 돈도 더 많은데 명의만 아들에게 돌려놓은 거야. 더 가난한 내가 노인 일자리에서 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고!"

"나이 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야지, 사회복지사에게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다 거짓말이야."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이 다투는 모습이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모집하고 선발하는 2월이면 매년 되풀이된다.

노인 인구가 677만 명. 그 중에 일할 욕구가 있는 어르신은 약 91만 명~114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제공된 일자리는 43만 개. 일자리 충족률이 약 38%에 그치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나도 공익형 일자리를 하고 싶어"

일을 하고 있는 노인끼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도 공익 활동 일자리 하고 싶어. 왜 나만 시장형 일자리 시키는 거야. 힘든 일은 돌아가면서 해야지. 저 노인네도 시장형 일자리 해보라고 해!"

"하던 사람이 그 일을 더 잘하는 거잖아. 저 노인네가 뭐라 하든 듣지 마. 나는 공익 활동 일자리만 할 거야. 시장형으로 옯기면 쥐약 먹고 죽어버릴 테니 알아서 해."



노인 일자리 유형은 공익 활동과 시장형 사업단으로 나뉜다. 공익 활동은 노인이 자기 만족과 성취감 향상, 지역사회 공익 증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을 말한다. 시장형 사업단은 노인에게 적합한 업종 중 소규모 매장 및 전문 직종 사업단 등을 공동으로 운영하여 일자리 창출하는 사업이다. 시장형은 정부의 지원비(일정기간 사업비 또는 참여자 인건비 일부)와 사업 수익으로 연중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다.

공익 활동은 월 22만 원을 받는다. 반면 시장형은 연간 1인당 2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이 중 인건비로 연간 최대 189만 원을 받는다. 시장형을 하면 1인당 월 약 16만 원가량을 받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8월부터 공익형 노인 일자리 수당이 올랐다. 월 22만 원에서 27만 원으로. 시장형은 동결됐다. 월 4만 원 인건비 차이가 9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러니 어르신들은 서로 시장형을 기피한다. 될 수 있으면 공익형 일자리를 하려고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아부한다. 서로 날을 세워 다투기도 한다. 그렇다고 서로 싸우고 질투해야 할까? 서로 힘을 합해 시장형 일자리 수당을 올리라고 요구하면 될 텐데.

힘을 모으지 못하고 다투는 이유

도대체 어르신들에게 일이란 무슨 의미일까? 일을 통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용돈벌이하고 친구도 얻어 좁아진 관계망을 두텁게 하는 것 아닐까? 두터운 관계망으로 서로 죽을 때 까지 보살피고 돌보며 지역에서 살아가는 거 아닐까?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보자. 전철 안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선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재빨리 자리를 옮기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자기 앞에 서 있던 친구를 끌어다 앉힌다. 혹은 한 손을 빈 자리에 얹으며 반대편에 있는 지인에게 "야! 여기 자리났어"라며 부른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두 사람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어색하고 착잡한 표정으로 그들 앞에 나는 서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를 그 여자와 내가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아무 관계가 없었고 앞으로도 무슨 관계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이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도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랑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 노인 일자리를 떠나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

서로 환대하는 관계를 위한 기획, '애장품 전시회'

어떻게 서로의 삶을 공감하고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는 관계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고민의 결과로 노년유니온이 기획한 것이 애장품 전시회였다. 450명 어르신들이 10명 단위로 모여서 한 달 동안 진행했다. 빈손으로 오신 분들은 "사연이 있는 물건 다 버렸어"라며 미안해 하셨다. 다른 분들은 물건을 기부하라는 뜻으로 알고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져오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힘들게 오라 가라 하냐며 불평했다. 우여곡절로 시작한 애장품 전시모임은 어르신들을 가을 단풍처럼 눈물과 웃음으로 물들였다.

어르신들은 대화 모임 후 애장품을 가져온 어르신이나 그렇지 않은 어르신이나 "이런 모임이라면 매일해도 좋겠어"라며 고맙다고 나에게 인사했다. 내게도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시간과 추억이었다. 대화에 참여하신 450명 어른신은 70세에서 85세 어르신들이었다.

남편은 미워도 시어머니는 밉지 않다고 해서 고정관념을 깬 어르신. 정권의 탄압으로 파티에서 신으려 했던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간직해 온 어르신. 남편의 배려로 시부모로부터 화를 면한 이야기. 아들의 출세를 위해 오빠 숟가락을 훔친 어르신. 죽은 두 아들을 잊기 위해 40년 동안 카세트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는 어르신. 호기롭게 애장품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는 어르신도 계셨다. 가족을 먹여 살린 생계수단을 애장품으로 가져오신 분도 있었다.

몇 작품을 감상해 보자.

 <작품 1> 물을 길어다 먹느라 신지 못한 버선


25살에 시집을 갔다. 그때 친정어머니가 버선을 만들어주셨다. 시집을 온 후 서울로 왔다. 물이 없어서 공동 시설에 가서 물을 가져다 먹어야 했다. 불편하고 세탁하기가 힘들어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거라 버리지 않고 놔두고 있다.

<작품 2> 남편의 배려를 느낀 시계


시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혼수로 시계를 선물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청량리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시계를 날치기를 당했다. 시부모님한테 혼날까 전전긍긍했다. 남편이 혼수시계랑 디자인이 똑같은 것을 찾아서 다시 사주었다. 화를 면했다. 남편이 속을 썩여도 이 시계를 보면 용서가 된다.

<작품 3> 바라만 보는 바바리


젊어서 혼자 됐다. 아들 둘, 딸 둘을 키우느라 안 해본 것 없다. 작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준 바바리코트. 하지만 정작 딸이 사준 바바리코트를 입고 갈 곳이 없었다. 나들이를 가거나 놀러갈 때 입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75세인 지금껏 걸어두고 보고만 있다. 지금도 나들이 갈 여유가 없다.

<작품 4> 죽은 아들을 잊기 위한 40년 된 카세트


아들 둘을 낳고 정관수술을 했다. 대성리에 놀러갔다가 작은 아이를 잃어버렸다. 다음 날에야 찾았는데, 아들은 아들이 죽어 있었다. 이후 정관 수술한 것이 풀려서 아내가 임신을 했다. 하늘이 죽은 아들을 대신해 새로운 생명을 보내 준 거였다.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된 어느 날 기타레슨을 받겠다고 나가더니 자살을 했다. 두 명의 아들이 나보다 먼저 갔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자식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을 카세트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잊어버렸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작품 5> 딸의 노후를 생각하며 간직한 머리카락


딸이 중학교 들어가면서 긴 머리를 잘랐다. 딸의 일부라 소중히 하고 간직하고 있다. 딸이 나이가 들어 머리가 많이 빠지면 가발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40년을 보관하고 있다.

<작품 6> 아들의 손톱과 가시를 뽑던 가위


이 가위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버지가 구입한 물건으로 어릴 때 항상 아버지가 이 가위로 손톱을 깎아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미끄럼틀을 타다가 발바닥에 가시가 깊게 박혔는데 아버지가 이 가위를 소독해서 뽑아줬다. 그래서 이 가위와 내가 보통 인연이 아니다. 아버지는 수산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이 가위는 동물실험용으로 구입한 도구 중 하나다. 그래서 나에게 까지 전해 내려왔다.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해서 이 물건을 버릴 수 없다. 

<작품 7> 부적으로 사용한 배냇저고리


1972년도에 아들을 낳았을 때 친정엄마가 손수 만들어 선물해준 저고리다. 이 저고리는 옛날부터 대학교 시험을 보러 갈 때 가방에 넣어 두면 합격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혹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지고 있으면 좋다고 해서 일종의 부적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지인이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고 평소에는 잘 보관하고 있다. 나중에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작품 8> 전쟁으로 숨진 오빠 유품이 된 바리깡


큰오빠가 서울에 있을 때 사와서 동생들 머리 깎아주려고 산 물건이다. 이 물건을 사고 오빠는 군대를 갔는데, 6.25 전쟁이 터져서 목숨을 잃었다. 어렸을 때라서 큰오빠의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현충일마다 국군묘지에 가서 오빠에게 인사한다.

애장품을 보며 서로를 보듬다

애장품 전시 모임에서는 싸움과 질투가 없었다. 비판도 없었다. 서로의 삶으로 초대하고 환대할 뿐이었다. 어르신들은 모임 후기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니, 동생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고생하고 살았던 이야기 들으니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지난 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현재를 살아야겠다."
"옛날 물건 보니 새롭다. 더욱 친해진 것 같다."
"나와 다른 삶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노년유니온에서 언젠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당신은 꼰대인가, 아닌가를 조사 한 적이 있다. 체크리스트에 20개 질문이 있었다. 20개 질문에 '예'라는 대답이 많이 나올수록 꼰대였다. 어르신들 중에는 꼰대로 나온 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청년도 조사했다. 놀랍게도 20대도 18개가 "예'라는 대답이 나왔다. 어쩌다 나온 게 아니라 종종 있었다. 이 결과로 알 수 있었다. 꼰대는 나이로 가르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대한 '태도'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구분되었다. 젊어도 다른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맹목적인 자기 주장만 강요하면 꼰대였다. 어르신이라도 다른 삶을 인정하고 환대하면 꼰대가 아니였다.


이제 어르신들이 애장품을 매개로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 나와 다른 삶을 환대하기 시작했다. 속엣말까지 터놓고 서로 친해지니 서로가 서로에게 엿을 붙여 놓은 것만 같다. 올 연말이나 내년 봄에는 어르신 500명의 애장품 인생 전시회도 열릴 예정이다.


돌아오는 2월에는 일자리를 두고 다툼 대신 서로를 환대하는 어르신들 얼굴을 떠올려 본다. 웃음과 연민이 그치지 않는 관계가 살아 있는 노인 공동체. 그 전제 조건을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