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고립사(孤立死)와 공영 장례






'고독사(孤獨死)'가 일상화하고 있다. 가족과 단절되고 사회와 인연이 끊어진 고립된 삶을 살다, 마지막 순간에도, 죽은 후에도 철저히 혼자 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흔히 이들의 죽음을 '고독사'라 부른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고독'이라기보다는 '고립'에 더 가깝다. 고립생(孤立生)을 살다, 결국 '고립사'한 것이다. 

고립사한 시신은 어떻게 될까? 단절된 가족이 나타나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는 흔한 장면을 생각하기 쉽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립사한 상당수의 분들의 시신은 오랜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가족들이 시신인수를 포기하고 국가에 위임된다. 이렇게 되면 가족이 있지만 일명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국가는 화장 처리만 한다.

'가난한 죽음' 그리고 부담스러운 장례비 

가족이 죽으면 남겨진 가족이 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난한 죽음' 앞에서 장례는 말처럼 당연하거나 쉽지만은 않다. 또한 가족의 죽음은 삶의 과정에서 큰 상실이자 슬픔이다. 하지만 '가난한 죽음'은 슬퍼할 겨를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수중에 현금은 장례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친척과 지인이라도 많으면 조의금으로 어떻게 장례를 치러볼 용기를 내보겠지만 친척과는 연락이 끊어진지도 이미 오래다.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하고 그나마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남겨진 가족은 '가난한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 12일 이른 아침 새벽, 무연고 사망자 등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나눔과나눔'으로 장례 지원을 신청하는 전화가 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가 위독해서 장례 지원을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자녀는 아들인 본인 한 명뿐, 사업에 실패하고 빚을 많이 지면서 신용불량 상태로 고시원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으로, 장례비를 치를 돈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연락했다고 한다. 

아들은 나눔과나눔에 전화하기 전에 공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빈소를 차리지 않아도 200만 원 정도 장례비용이 필요하다고 들은 아들 수중에는 현금 30만 원뿐이었다. 나눔과나눔의 지원으로 장례를 마친 후 아들은 "아버지를 진짜 무연고 처리했으면,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버텨내겠어요"라며 장례 지원에 감사 인사를 했다. 

▲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 후 지방을 태우는 모습. ⓒ박진옥


장례 지원을 받은 아들은 50대 초반의 나이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근로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근로 능력은 있지만 아버지 간병과 본인의 질병 등의 이유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로 능력이 있다고 지금 당장 돌아가신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나눔과나눔의 장례지원이 아니었다면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무연고 사망자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s)으로서의 '죽음' 그리고 탈상품화

전통적으로 관혼상제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는 가족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돌봄 서비스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이제는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가족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하기에는 점차 한계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앞서 언급한 '고립사(孤立死)'와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다.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사안을 가족 공동체가 대응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개인과 가족의 문제이니 국가는 지켜봐야 할까? 

'질병'으로 가족 공동체가 위험에 빠져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국가는 '건강보험'으로 질병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다. 실업에 따른 소득 감소로 가족 공동체가 위험에 빠질 때 국가는 '고용보험'으로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개입한다. 이러한 사회보험 방식 외에도 소득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 방식으로 사회적 위험을 제거하기도 한다. 인구·가족구조·성 역할 등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의 돌봄 문제 즉 '신사회 위험(new social risks)' 역시 이제는 '사회서비스' 측면에서 새롭게 대응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제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사안을 가족 공동체가 대응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면 '죽음' 또한 신사회 위험으로 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발전 수준은 국민의 삶에서 시장 의존성을 얼마나 줄이느냐, 즉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탈상품화란, "탈시장화라고도 하며, 상품이나 서비스의 거래, 이용, 소비 등에 있어서 시장원리의 배제 정도. 즉,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소비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복지국가에서는 이미 시장화되어 있는 부분을 공공의 영역으로 이전시켜 복지서비스와 관련하여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시켜기도 한다.  

시장을 통해서 복지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경우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삶의 질에 격차가 발생한다. 복지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시키고 집단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로서 기능하려면 사회서비스의 탈시장화와 탈상품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 장례' 

장례가 복시서비스로 탈상품화된다면 어떨까? 공영 장례제도가 마련되어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직장(直葬) 방식의 장례가 아닌 최소한 가족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보장으로서 공영 장례제도가 마련된 사회를 상상해 본다. 

장례는 죽은 사람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그 기본적 의미가 있다. 또한 장례는 다른 가족과 지인들에게 돌아가신 분과의 감정을 정리하는 이별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정적 이유로 장례가 생략된다면 살아 있는 가족에게는 평생 풀지 못하는 숙제가 남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이 사회적 불안이 되고 사회적 비용이 될 수도 있다. 

장례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이제는 '신사회 위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제는 가족공동체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국가가 어떻게 잘 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죽음의 의식인 장례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죽음의 의식마저 상업화된 현실 때문에 고인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산 자들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부모와 자녀가 그들의 가족의 시신인수를 포기하는 나라!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 빈소도 마련하지 못해 못내 미안한 자녀들! 요람에서 무덤까지 존엄한 삶을 약속하는 '복지국가'에 '고립사'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길을 묻고 있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95201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