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수정은 무죄인가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은 핵심 비급여는 해당이 안 되고 재정 규모도 줄인다고 한다. 기초연금도 ‘차등 지급’으로 변했다. 공약에 어떤 ‘뻥’이 담겨도 괜찮다는 말인가.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3월 나는 동료 한 명과 함께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공약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의 당선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아이가 희귀 질환을 앓는 우리 동네 한 엄마의 좌절을 전하고 싶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사회보험료를 전액 지원하겠다던 약속에 기대를 걸었던 주위 청년들의 실망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도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앞으로 쓸 곳을 구상하던 어르신들의 탄식이 곳곳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선거는 끝났지만 복지 민심의 분노와 심판을 보여주고자 했다.

6월19일 검찰로부터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됨)” 결과를 통보받았다. 4대 중증질환 공약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시행하거나 추진하고자 하는 장래에 대한 의사 표시 또는 계획”이어서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무죄의 이유이다. 미래 약속이므로 허위 사실 공표 여부를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선거공약집은 권력을 국민에게서 위임받기 위해 내놓는 계약서다. 국민은 그 약속을 기준으로 투표를 했는데 당선되었다고 공약을 임의로 바꾼다면, 이건 선출 권력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생길 만큼 심각한 일이다.

   
 
국민들은 박 후보의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 공약을 모든 병원비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너무도 상식적인 해석이다. 공약집에도 분명히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비급여 부문 포함)을 단계적으로 2016년 100%로 확대”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공약을 내건 당사자는 병원비 문제의 중심인 핵심 비급여(선택진료,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애초 국가 책임 공약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필요 재정 규모도 그렇다. 대통령 선거 TV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4대 중증질환 공약 수행에 연평균 1.5조원이 소요된다고 밝혔고, 당시 새누리당도 공식 브리핑으로 이 금액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공약가계부를 보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는 재정 규모가 임기 5년 동안 총 2.1조원, 그러니까 연평균 4000억원이다. 6개월 만에 4대 중증질환 환자 수가 대폭 줄었단 말인가?

공약집은 또 약속했다.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증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A값(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10%)를 지급”하고, ‘모든 노인에게 현행 약 10만원인 기초연금을 2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인수위원회는 이 공약을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가입 기간에 연동해 4만~20만원씩 다르게 지급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애초 공약이 ‘차등 지급’이었다고 우긴다. 참 황당한 궤변이다.

그 약속을 기준으로 투표했는데…

공약 이행 전체 로드맵인 공약가계부도 애초 약속과 달라지고 있다. 가계부의 총규모인 134.8조원은 공약에 나오는 134.5조원과 거의 같다. 그런데 내용이 변질되었다. 애초 공약에는 창의산업 2.1조원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전체 조달 재정이 거의 복지·민생 분야에 사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약가계부에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등 방위사업에 14.4조원, R&D와 위성 발사 등 과학기술 사업에 9.4조원이 배정되었다. 재정 조달 총규모에 변화가 없는데 복지가 아닌 지출이 비집고 들어왔다면 그만큼 복지공약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4대 중증질환 비용이 연 4000억원으로 줄어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 계산으로는, 공약가계부 134.5조원 중 실제 복지와 민생 관련 추가 지출은 100조원을 넘지 않을 듯하다.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이 실제는 연평균 20조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재정 조달 계획에서도 꼼수가 엿보인다. 전체 134.5조원 중 무려 84.1조원을 국정과제 재투자, 재량지출 조정 등 기존 세출을 절감해 조달하겠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존 복지 지출을 절감해 12.5조원을 마련한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 재정을 모으는데 기존 복지를 줄인다니?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답한다.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가 철도부지 위에 짓는 ‘행복주택’으로 개념 변경되면서 구조조정되는 게 9.5조원이다.” 기존 정부 주도 임대주택을 이름만 바꾸어놓고 이것을 세출 절감을 통한 재정 조달이라고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고 있다.

우리는 공약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후보를 찍었다. 그런데 공약에 어떤 ‘뻥’이 담겨도, 마음대로 내용을 바꾸어도 죄가 아니란다. 대한민국 선거민주주의의 근본을 대통령과 검찰이 깨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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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