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아파트 사람들은 연이어 목숨을 끊어야 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되돌아본 20년 복지 현장

 

유기훈 서울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나는 사회복지사이다. 20년간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잔뼈가 굵었어도 여전히 보람과 한계 사이를 넘나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보육원생 결연 후원,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남을 돕는 일에 평생 나섰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어릴 적부터 간호사나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다. 결국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하였다.

남 돕는 일을 하고 싶어 사회복지학과 지원

지금이야 사회복지사는 누구나 아는 직업이 되었지만 20년 전에는 한참을 설명해도 '좋은 일 하는 사람, 취미로 자선사업 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됐다. 되돌아보면 당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급급했던 어설픈 신참 사회복지사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그리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큰 고민을 하지 못했기에 남들에게도 내가 하는 직업을 잘 설명해내지 못한 듯하다.

모두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복지'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고 일부 가난한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시혜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도 시장도 구청장도 모두 '복지'가 공약이고 대세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정말 크게 바뀌었다.

한편 신자유주의와 물질 자본의 논리로 무장된 사회에서 가난으로 인한 결핍의 문제는 더 이상 물질의 보상으로 해결될 수 없게 되었다. 돈으로 시작된 문제는 질병과 병증의 악화, 교육의 소외, 가족 관계 단절, 폭력과 정서 불안 등 복합적 문제로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 한부모, 조부모, 알코올 중독, 정신과적 문제, 실직, '왕따', 은둔형 외톨이, 자살 등도 과거에 비해 발생 규모와 정도에서 훨씬 심화되고 있다.

이름 대신 '영구'라 불린 아이들

1994년의 일이다. 24세 새내기 복지사이던 나는 서울 ○○구의 영구 임대 아파트 앞에 자리한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는 생활보호대상자가 1종 거택보호자, 2종 자활보호자로 나뉘어 서비스와 수급액이 지원되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생활보호대상자인 영구 임대 아파트(임대 아파트는 매입 임대, 전세 임대 등 다양하지만 당시에는 수급으로 선정되면 영구적으로 살 수 있다 하여 영구 임대 아파트라 하였다)에 사는 아이들은 옆 동 일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로부터 이름 대신 '영구'라고 불렸다. 거주지부터 수모를 당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부끄럽고 창피한 곳으로 여겼다.

임대 아파트 초기 시절에 아파트에 배정받기 위한 자격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 낮에 빈집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성 문제, 본드나 가스 흡입 등으로 인한 화재나 사고, 장애와 노령으로 인한 문제, 가족 해체 등등. 주민들이 내가 일하는 복지관에 찾아와 호소하는 일들을 겪노라면 하루하루가 사연과 눈물이 엉킨 드라마였다.

내가 일하는 복지관은 사회복지사 6-7명이 프로그램 진행부터 사례 관리까지 모든 일을 해야 했다. 당시 급여가 초봉 기준 연 1200만 원에도 못 미쳐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만들어주지 않아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사회복지사의 급여는 두 배 올랐지만 물가 상승률과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공무원 수준에 맞춘 처우 개선은 요원한 과제이고 장시간 근무에 따른 업무 과다도 계속되고 있다.

어려웠지만 정이 오가던 시절

당시에는 지역사회복지관이 자활 사업까지 겸하고 있어서 파출 여성 모임인 '까치여성회'를 담당했다. 저소득 여성을 대상으로 가사, 간병 파견 전문 교육을 시키고 회원제로 구인자와 구직자를 조직하여 연결하는 사업이다. 일하는 엄마들은 자치회비도 걷고 한 달에 한 번 일을 마치고 저녁에 복지관에서 월례 모임을 하면서 서로 고충을 위로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재교육의 장으로 복지관을 활용했다.

그중 선배격의 한 분이 총무를 맡았다. 당시 총무님은 주 1회는 파출 업무를 하는 대신 까치여성회를 관리했다. 회원 상담 등을 통해 조직을 관리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참기름, 들기름 등을 판매해 운영 비용을 마련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회원이 갑자기 파견이 약속된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거나 일하러 오기로 한 회원이 오지 않았다고 연락이라도 오면 식은 땀을 흘리며 대체할 회원을 찾느라 야간에도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본 엄마들이 새파란 사회복지사 실무자가 쩔쩔매며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일을 마치고 오후 7시에 모이는 월례회 때는 애들 헌옷도 가져와 나누고 김치를 담그는 김에 조금 가져왔다며 살짝 놓고 가는 등 서로 챙겨주는 인정이 있었다.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기억이 오래 남는 건 서로 주고받은 인정이었던 것 같다. 신 총무님, 지금은 어디 계실까? 꼭 한번 뵙고 싶다.

사회복지사 수는 늘었지만…

1996년부터 동작구에 있는 기관으로 옮겨 일했다. 당시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어 시설 서비스와 대비되는 재가복지봉사센터(재가복지사업)가 선보였다. 이에 나는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사례 관리 서비스를 통해 개인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고 문제 해결을 돕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는 해당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자치센터)의 사회 업무 담당자들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당시 사회복지 전문 요원 제도는 사회 복지 직렬이 아닌 별정직 7급(이후 별정직 8급이 되었다가 현재는 9급 사회복지직 직렬로 변경)이었는데 동사무소에 이 인력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복지 비전공자인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사회 담당 업무(당시 생활보호대상자 및 취약 계층을 담당하는 사회 담당 업무)를 하다 보니 모두 기피하는 업무로 전락했다. 실제로 업무의 양과 민원이 가장 많은 업무여서 어느 동사무소는 1년에 3번씩 사회 담당이 바뀌기도 했다. 업무의 전문성은 고사하고 사회복지관과 사회복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협조를 얻기에도 어려움이 많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점차 사회복지 전문 요원의 수가 많아져서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포진되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도봉구의 경우 십여 년 전에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동별 1~2명이었는데 2013년 현재는 6~8명가량 배치되어 있다. 놀랄 만한 변화이다. (정규직 4명과 계약직과 도우미 4명 정도인데 복지지원팀장 1명, 사회직 2~3명, 행정직 1명, 방문 전담 계약직 1명, 복지 도우미 1명, 장애인 행정 도우미 1명. 주민센터별로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도봉구는 '복지 전달 체계 개편 원스톱 서비스 시범구' 1위로 선정되어 전달 체계에 대한 대대적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18명의 사회직 공무원을 추가로 채용하여 각 동에 1명씩 추가 배치할 예정이란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복지 접근을 높이고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아지고 있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업무가 경감되기를 바란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넓어지고 과거에 비해 사회복지사의 처우도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그런데 후배들은 점점 더 힘이 든다고 호소한다. 왜 그럴까?

최근의 잇단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자살에서 보듯이 업무량이 엄청난 수준이다. 과거 수급자 행정 관리 외에 현재 여성가족과와 관련해서 한부모 관련 업무, 출산 장려금, 다문화 사업 보육료 신청, 저소득층 보육비 신청 등에서 일이 늘어났다. 노인장애인과와 관련해서는 노인 장애인 등록, 장애인 수당, 노인 돌봄 서비스, 문화관광과와 관련해서는 문화 바우처, 스포츠 바우처 등 무수한 업무들이 주민센터로 내려와 있다. 게다가 제도가 복잡해지고 다변화하여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담당 공무원의 대폭 증원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초임 사회복지직의 자살이 많은 이유도 주목해 볼 일이다. 지방에서는 1~2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으로 알고 있다. 선배들의 이렇다 할 지도와 관심도 없이 혼자 산적한 문제를 감당하다 이를 비관해 후배들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여럿이 함께 논의하고, 해당 시군구의 진지한 노력이 있었다면 이런 안타까운 사례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 3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회복지사 자살 방지 및 인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고(故) 이민재, 고(故) 강민경, 고(故) 안광남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복지사 근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추모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초생활보장제, 제도의 결함과 운영의 경직성

1997년 말 대한민국이 IMF 금융 위기를 맞았다. 그 여파로 대량 실직과 부도가 이어지며 서민들의 살림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즈음 기존 생활보호법을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돼 복지 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당시 나는 각 복지관에서 1명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위한 전문 상담원으로 가정 방문 조사에 나서는 일을 맡게 되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제도로 인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나 역시 부양의무자로 인해 탈락하신 분들의 민원을 수없이 접해 왔다.

특히 수급 탈락 사유가 발견되면 바로 통보가 우편으로 가고 한두 달 후 모든 혜택이 중지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시에 집도 쫓겨나고 생활비도, 의료 혜택도, 교육비도, 그 외 각종 감면 제도도 대부분 박탈된다면 드는 생각이 무엇일까?

대답은 뻔하지 않은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잇단 자살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한두 달 만에 모든 혜택이 없어지는 현행 제도의 맹점도 작용하고 있다.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급여의 내용을 점차 조정하는 과정, 즉 대응 기간을 배려하여 탈락 이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도봉구는 나와 우리 복지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민간 재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을 확보하여 이러한 수급 탈락 가정의 경우 일시적이긴 하지만 생계, 주거, 의료비 등을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서울시도 희망 온돌 위기 기금, 서울기초보장제도와 주거비 보전 등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크고, 근본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종합사회복지관도 새롭게 다듬어야

복지 시설의 종류는 다양하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반드시 설치되거나 인구 10만 명당 1개씩 설치되어야 하는 종합사회복지관이 있고, 구별로 장애인복지관, 노인종합사회복지관, 자활센터, 건강가정지원센터, 정신건강센터, 여성센터가 1개씩 있다. 또한 장애별로 특성화된 시각, 청각, 뇌병변 등 장애인복지관이 추가로 설치될 수 있다. 소규모 시설로는 자치구별 특성과 관심에 따라 알코올상담센터, 노인센터, 재가노인복지센터, 시니어클럽 등도 설치되어 있다. 보육과 교육 시설로 분류되는 시립청소년수련관과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문화의집도 지역별로 존재한다.

내가 일하는 종합사회복지관도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복지 기관이 생겨나면서 복지 서비스도 늘어나고 주민들의 선택 기회도 넓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종합사회복지관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생각이다. 이미 지역마다 종합사회복지관 외에 다양한 전문 기관들이 생겨났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사회 복지 의제와 주민을 조직화하는 업무 이외에 수많은 복지 전달 과정을 맡도록 설계되었다. 업무가 종합상자인 셈이다. 저소득 집중 밀집 지역(임대 아파트 앞)이나 지역 사회에서 저소득 주민에게 제공되는 무료 급식, 방과 후 돌봄과 치료 영역, 아동부터 어르신의 지원 영역, 각종 돌봄 영역 등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지역 사회 조직화와 수시로 떨어지는 시책 사업(희망플러스, 서울디딤돌,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등등)이 있고, 최근 마을 만들기 사업도 이 대열에 합류해 있다.

예산의 한계도 오래된 문제다. 현재 보조금이 서울시 90%와 지자체 10%의 비율로 지원되고 있는데 이 보조금으로는 직원들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데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인건비를 뺀 사업비와 관리 운영비는 후원금과 각종 제안 사업, 실비 사업으로 충당해야한다. 복지관과 사회복지사들이 사업비 마련과 사업 효과 달성을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2-3년차 사회복지사는 하루 이틀에 뚝딱 사업 제안서를 써내야 하는 도깨비방망이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일할 수 있다는 농담도 하곤 한다.

이러한 안팎의 어려움을 갖고 일하고 있건만, 지역에서 자살한 주민이 속출할 때 지역 사회복지관은 무엇을 했느냐, 사회복지사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화살이 돌아온다. 이럴 때마다 사회복지사 선배로서 자괴감이 심하게 든다.

그러나 어찌하랴. 배워서 남 주기가 소명인 게 사회복지사라 스스로 다짐해 본다. 다행히 최근 종합사회복지관은 치료와 돌봄 서비스 외에도 지역 사랑방으로서 주민을 모으고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을 지향 복지관으로 지역 사회에 더욱 터전을 내리려는 것이다.

거버넌스(민관 협치)도 이전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 지금 상황은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 지자체와 복지관의 관계가 탑다운 방식의 일방통행이었다면, 지금은 협치를 하지 않고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마을 만들기, 통합 사례 관리, 지역 복지 계획 수립을 담당하는 지역복지협의체의 운영 등이 그러하다. 함께 사는 마을이 모여 고을이 되고 구가 되고 시가 된다. 마을을 살기 좋게 만들자는 것은 결국 주민들이 얼마나 즐겁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즐겁게 마을에서 살려면 민과 관이 함께 만들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아직까진 주민의 역량이 천차만별이다. 지자체와 복지관이 우선 주민이 편히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문턱을 낮추고 귀를 기울이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후배 사회복지사들이여, 힘내시라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20년이다. 돌이켜보면 사회복지의 혁명이라고도 느낄 만큼 변화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로만 여겨지던 복지가 이제는 모두 향유해야하는 '권리'로 인식되고, 심지어 '복지국가'까지 이야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사회복지사의 처지와 환경은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의 20년을 지나온 20년처럼 치열하게 맞이하고 싶다. 특히 후배 사회복지사들이 신명나게 일하는 복지 현장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후배 사회복지사들이여,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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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