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예산이 아니라 긴축 예산


“부자감세 철회” 자화자찬 넘어서야


촛불 민심은 예산과 세금의 획기적 혁신을 요구한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 예산과 세법개정이 의결되었다. 이에 대해 언론은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는 ‘슈퍼 예산’이라 소개하고, 소득세율 최고구간 신설을 두고는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 폐기되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소득세에서 ‘부자감세 철회’ 성과를 달성하였다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는 이번 예산과 세법 개정 내용의 실체와 어긋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이번 의결이 우리나라의 기존 예산과 조세구조의 문제를 답습했다고 판단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촛불 민심의 요구가 준엄한데도 재정 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은 여전히 안이하다.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아래 문제들이 명확히 진단되고 또 해결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내년 예산은 ‘슈퍼 예산’이 아니라 ‘긴축 예산’이다. 국회에서 의결된 2017년 정부총지출은 400.5조원이다. 작년에 국회에서 의결된 2016년 예산 386.4조원에 비해 14.1조원, 3.7% 늘었을 뿐이며, 총수입 증가율 5.9%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또한 올해 하반기 행해진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총지출 400.5조원은 398.5조원에서 고작 2조원, 0.5% 늘어 역시 총수입 증가율 3.3%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경상금액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었으니 ‘슈퍼예산’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건 민망한 일이다. 올해 추경 금액에서 제자리 걸음에 그친 예산일뿐이다.


우리나라 재정 실태를 직시해야 한다. 2016년 일반정부 기준 한국의 재정 규모는 GDP 31.9%로 OECD 평균 40.8%에 비해 상당히 작다. 이는 2015년 32.4%에서 하락한 수치이고 이번 미미한 증가율로 내년에도 현행 수준에 머물 듯하다(OECD의 전망은 2017년 31.6%로 오히려 하향). 앞으로 적극적인 재정 지출로 민생을 지원하고 국가재정 규모도 국제 수준으로 상향해가는 강력한 조치가 요구된다.


둘째, 복지분야 예산은 사실상 올해 수준에서 동결된 것과 다름없다. 2017년 복지예산 129.5조원은 작년에 국회에서 의결된 2016년 예산 123.4조원에 비해 6.1조원, 4.9% 증가한 금액이다. 하지만 올해 추경 복지 예산 126.9조원을 기준으로 보면 2.6조원, 2.0% 증가에 불과하다. 내년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지출액 자연증가분이 약 2.6조원이므로 이를 제외하면 내년 복지분야 예산은 올해 추경 예산 수준에서 동결된 것에 다름아니다.


2016년 우리나라 복지분야 지출은 GDP 10.4%로 OECD 평균 21%의 절반에 불과하다. 근래 보육, 기초연금 등에서 복지가 늘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빈약한 급여와 광범위한 사각지대, 국민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시급히 개선돼야할 과제이다. 국민들의 복지 확대에 대한 염원을 생각하면 정부와 국회의 더딘 발걸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심지어 내년에 국민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이 올해에 비해 2211억원 삭감된다. 국민건강보험에 명시된 일반회계 국고지원액이 예상보험료의 14%여야 함에도 정부안대로 11%만 책정된 결과이다. 애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올해 수준으로 증액하여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으나 끝내 기획재정부 뜻대로 다시 삭감되었다. 행정부는 법 취지를 무시하며 국고지원액을 과소편성하고 국회는 이를 방조하는 일이 되풀이되더니 급기야 절대액이 삭감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교육분야에서는 누리과정 정부지원액이 8600억원으로 편성되었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일부를 지원하는 것은 진일보한 일이지만, 3년 한시적 조치이고 금액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소요액 약 2조원의 45% 수준에 그친다(유치원까지 합친 누리과정 예산 전체 규모는 약 4조원). 어린이집에 지원해야할 나머지 약 1.2조원은 고스란히 교육청 몫으로 전가되는 결정이다. 무상보육은 중앙정부가 의사결정해 진행되는 사업이다. 마땅한 자체 재원이 없는 교육청의 예산구조에서는 관련예산을 중앙정부가 전액 책임지는 게 옳다. 이후 제도적 보완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세법 개정에서 법인세율 인상이 무산된 것을 규탄한다. 기업과 가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소득 중 기업 몫의 비중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낮은 법인세 혜택마저 누리고 있다. 이에 최소한 노무현정부 시절 법인세율(25%)은 회복해야 한다는 게 국민적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로 결정되었다.


이번 정기국회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만들어준 여소야대 첫 해이고, 국회의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야당 소속이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와 여당의 입지가 취약해 어느 때보다 법인세율 인상의 호기임에도 야당은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넷째, 2000년 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또 2년 유예되었다. 이번에 정부와 국회는 주택임대소득이 과세되면 세부담 이상으로 국민건강보험료 부담이 생긴다는 논리를 유예의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다른 지역가입자들은 소득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유독 임대소득자에게만 부과를 미루자는 이야기는 형평성에 위배된다. 현행 지역가입자 부과체계 문제점은 임대소득자만 예외로 둘 것이 아니라 조속히 부과체계 전체를 손보면서 해결하는 게 정도이다. 조세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리를 엄정하게 세우는 것이다.


다섯째, 소득세에서 40% 최고구간 세율이 도입된 것은 지금에 비해 개선된 결과이다. 하지만 세율이 올라도 적용대상이 많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이번 개정에 따르면, 40% 세율은 과표소득이 5억원을 넘는 사람이 대상이다. 그 인원이 약 6만명, 인구의 0.1%에 불과하고 세입도 6천억원에 그친다.


우리나라 소득세 세입은 2015년 약 69조원인데(지방소득세 포함), GDP 규모와 가계소득 비중을 감안해 계산하면 OECD 평균에 비해 약 50조원 부족한 상태이다. 심각한 계층간 소득격차로 상위계층에 대한 소득세 강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국민의 눈높이에 부족하다.


여섯째, 세법개정 여야합의 핵심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이 과연 진정성있게 증세노선을 견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율 인상은 정부․새누리당의 반대와 악화된 경제상황을 고려하여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소득세 최고 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고율로 과세(과표 5억 초과 고소득자 38%->40%)하는 등 부자감세 철회 성과를 달성”하였다고 자화자찬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명박정부의 부자감세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는 애초 실행되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시기 35%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명박정부 마지막 해에는 오히려 38% 구간이 신설되었다. 또한 박근혜정부에서도 2013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소득이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강화되었으며, 기존 소득공제 일부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7천만원 초과소득자를 대상으로 약 1.6조원의 증세도 단행됐다. 이러한 조치 등에 힘입어 소득세 세입은 2011년 GDP 3.5%, 2012년 3.7%, 2013년 3.7%, 2014년 4.0%, 2015년 4.4%로 증가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고작 6천억원 증세 조치를 가지고 ‘부자감세 철회 성과’를 운운하는 건 견강부회에 가깝다. 앞에서 비판했듯이, 여소야대 첫 정기국회였음에도, 법인세 인상을 철회하고 주택임대소득 과세 유예에 동조한 것을 종합하면 이번 세법 개정 결과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정리하면, 2017년 예산은 ‘슈퍼 예산’이 아니라 ‘긴축 예산’일뿐이다. 증가 폭이 미미해 국가재정으로 온전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이후 적극적인 재정 확장, 특히 민생분야의 지출 확대가 요청된다. 또한 세법에서 소득세율 인상이라는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적용 소득이 너무 높고, 법인세율 인상과 주택임대소득 과세가 이뤄지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타협이라고 보기 어렵다. 촛불 민심은 대통령의 탄핵뿐만 아니라 민생 정치를 갈망한다. 국회는 예산과 세금의 획기적 혁신 작업에 나서야 한다. <끝>



2017년 12월 6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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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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