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주택임대차보호법 반대는 자본주의 아닌 이기주의

 

 

정용찬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면 청년들로부터 다양한 주거 상담 요청 전화를 받게 된다. 계약서 상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청소비를 요구하는 임대인 때문에 어떻게 할지 몰라 하는 분, 임대인이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전세자금 대출을 못 갚는 어려움에 처한 분, 고시원을 나왔는데 여름철에 잡은 모기로 인해 생긴 벽지의 핏자국을 이유로 임대인이 보증금 6만 원을 돌려주지 않아 직접 핏자국을 지우러 갈지 고민하는 분 등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식을 벗어나는 갑질에 시달리는 청년세입자가 많을까?' 하며 우울해지기도 한다. 

 


나이로서의 청년이 아니라 취약계층으로서의 청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청년팔이가 지속되는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힘든 것이 청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청년으로 묶이는 집단이 취약계층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청년들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남성 가부장 중심의 4인 가족 체제가 붕괴하면서 청년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행정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에 너무나 관성적이었고 이들의 복지부동 속에서 청년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 주거에서 역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서울 전체가구와 서울 청년가구의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 비율과 주거 빈곤율(최저 주거 기준 미달+지하, 옥탑방 거주+소득대비 임대료 비율 30% 이상 가구) 추이를 보면, 두 집단 모두에서 1990년대까지 수치가 감소해오다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서울 청년가구의 수치들만 감소 경향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청년들의 주거 상황이 주목받는 이유가 단순히 2~30대라는 연령 혹은 세대 때문이 아니라 이들 집단에서 주거 취약계층으로서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 역시 주거 빈곤에 처한 청년을 비롯해 주거 취약계층 문제 전반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 그림1. 서울 전체가구와 서울 청년가구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 빈곤 변화 (1995~2015) (%) 출처: 최은영, 2018.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몇 가지 정책들
  


주거 빈곤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집을 많이 공급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7% 수준으로 OECD 평균을 밑돌고 있다. 여전히 홈리스, 기초생활수급자 등 주거 취약계층을 공공임대주택이 온전히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지역 주민들이 보이는 님비현상으로 인해 사업이 좌초될 위기가 번번이 반복되고 있다.

▲ 청년임대주택 건설 반대 현수막. ⓒ민달팽이유니온


이 밖에도 공공임대만으로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다양한 세제혜택을 제공하여 민간임대사업자의 양성화를 시도하고 또 공적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시세 대비 70~95% 수준으로, 주거 취약계층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공급 중심의 해결책 외에 세입자의 주거권 자체를 개선시키는 방법도 있다. 제도권으로 들어온 민간임대사업자가 공급하는 주택을 등록임대주택이라고 하는데 이 집에서 세입자는 최대 4~8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받는다. 등록임대주택 임대사업자는 임대료 인상도 매해 5%를 초과하여 요구할 수 없어 세입자 입장에서는 주거비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인지 부족 속에서 손쉽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임대사업자가 제도권에서 재이탈했을 때 좀 더 보장받을 수 있던 세입자 권리가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도 지니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등록임대주택에서의 세입자 권리는 모두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해당하는 집에 사는 세입자에게만 혜택이 있다는 점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주거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임대차계약 전반을 규율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주목하게 된다.  

▲ 청년임대주택 반대를 반대하는 집회. ⓒ민달팽이유니온

 


강산보다도 굳센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거주기간부터 주거비 부담까지 세입자의 권리 전반을 다루고 또 임대차 분쟁에서의 근간이 된다. 모든 임대차 계약에서의 세입자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특정 유형의 집에 들어가야만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급 중심의 정책보다 보편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세입자 권리 규정들이 1989년 이후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0년이면 강산도 세 번 변하고, 정권도 여섯 번 바뀌며, 두 차례의 경제위기도 찾아오는 긴 세월이건만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몇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그보다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이 법에 따라 세입자들은 2년 동안이나마 계약기간을 보장받아 왔다. 하지만 임대료 인상 제한 규정은 정작 중요한 재계약시에는 적용되지 않고 또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그 집에 얼마나 많은 선순위 보증금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등 현재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 멈춰진 30년 동안 전월세신고제가 도입되었더라면 세입자들의 전재산과 다름없는 보증금과 전세금이 얼마나 많이 깡통전세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을까. 또, 만약 계속거주권(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사 걱정 좀 안 하겠다고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 주거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고, 때로는 상담을 받다 전세금을 떼일까 걱정하며 울먹이던 청년들이 생각나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모두, 강산보다도 굳센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주거 취약계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조그마한 충격에도 주거 빈곤의 늪으로 빠질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임대인의 사적 재산인데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조차 세입자가 임대료를 체납하지 않는 한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부하거나 세입자를 강제 퇴거시킬 수 없다. 뉴욕의 경우 임대료 상한제도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이 다른 재화에 비해 공급 비탄력적이라 시장의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는 점을 생각하면 이처럼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가 아니라 시장실패의 조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적 재산권임을 이유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수호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팽배일 뿐이다. 또한, 2018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UN 주거권 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사실상 임대인의 권리만을 보장하는 제도로 평가했는데 이러한 법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논리에 발목 잡혀 30년동안 개정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부끄러움일 뿐이다. 

보편적 세입자 권리 보장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통해서든, 민간임대사업자 양성화를 통해서든 공공부문은 나름대로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범위에서 세입자 권리를 개선시키는 변화가 필요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거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거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비교 기준 임대료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을 고려하여, 시민사회에서는 지난 7일 '세계주거의 날'을 맞이해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가 출범하였다. 많은 시민들도 세입자 권리의 개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 10월 7일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가 출범했다. ⓒ민달팽이유니온


다시 한 번 상상해본다. 비록 지난 30년 동안은 전월세신고제가 도입되지 않아 깡통전세 피해를 입고 피 같은 전세금을 날린 청년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청년들이 없는 세상을. 지난 30년 동안은 2년 넘게 한 집에서 거주한다는 상상을 못 해봤지만, 이제는 세입자의 큰 과실이 없는 한 한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세상을.  

주거 취약계층으로서 청년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만 행복하고 누군가에게만 교통이 편리한 집이 아니다. 우리가 주거 빈곤에서 벗어나고 우리의 친구가 주거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주거권이 제대로 보장받기를 원할 뿐이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3289

 

세입자들 다 죽으면, '갓물주'는 무사할까?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면 청년들로부터 다양한 주거 상담 요청 전화를 받게 된다. 계약서 상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청소비를 요구하는 임대인 때문에 어떻게 할지 몰라 하는 분, 임대인이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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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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