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애인 비하하는 정치권, 갈 길 먼 장애인 권리

 

 

양혜정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연초부터 장애 관련 이슈가 연이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과 이를 비판하는 자유한국당의 논평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발언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장애가 있는 최혜영 강동대 교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자유한국당은 "뼛속까지 장애인 비하가 몸에 밴 것"이라고 이해찬 대표를 비판하며,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고 정말, 두 거대 정당의 장애인 비하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지경이다.

이해찬, 장애인을 영입하며 장애인을 비하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장애인 비하·혐오·차별이라는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 단순한 실언 정도로 치부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정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건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지만, 사실 문제는 정치인들에게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희화화하는 내용을 TV나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최근에는 웹툰이나 유튜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 또한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나 농담을 일상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지음)에서 우월성 이론을 인용하며,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덧붙여 여러 논문에서 취약 집단에 대한 농담은 결코 가벼운 유희가 아니며, 차별을 촉진시키는 힘이 있음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결국 사회적 취약성을 지닌 장애인들이 비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먼저,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떠한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많은 사람은 장애인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의존적 존재로 본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누군가의 수고가 없다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속한 사회의 모습이다.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회이고, 사회 안에서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공존하며,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국가이다. 신이나 왕을 주인으로 여겼던 시대와는 달리 국가는 시민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국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았으므로 시민의 존엄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민은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필자의 주장이 아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과연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모든 국민에 속해 있는가이다. 법적으로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국민이 맞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삶은 어떠한가? 삶의 상당 부분 혹은 전 생애 걸쳐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자랑하면서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자선과 시혜의 위치에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고 있다. 마치 우리 사회가 아닌 다른 층위 어딘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전히 부족한 장애인활동지원 

최근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 관한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자. 익히 알려진 대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들의 오랜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이 이 제도로 인해 시설을 벗어날 수 있었고, 집에서만 갇혀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대로라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옳다. 장애인 개개인의 선택과 자기 결정, 사회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마땅하다. 당사자들의 요구처럼 활동지원시간은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에 기반해야 하며, 국민으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생존마저 위협받는 수준으로 지원된다. 여기에 더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본인부담금은 계속 인상되었다. 많게는 월 30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최소한으로 지원받는 시간마저 줄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본인 부담금은 장애인의 생존을, 장애인의 자립을,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돈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국민의 권리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소득보장도 되어 있지 않고, 노동시장에도 배제된 장애인들은 이를 구매하기 어렵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액은 242만1000원으로 전체 가구 소득액 361만7000원의 66.9%에 불과하다. 이 중 장애인 가구의 의료비, 보호 및 간병비 등의 장애로 인한 추가 지출 비용은 1,651,000원이나 된다. 장애인가구가 인식하는 주관적 경제 상태에서 하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61.5%나 되고, 의료기관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률은 17.7%나 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마저도 만 65세가 되면 이용할 수가 없다.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아닌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기존의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아닌 요양보호사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고, 시간도 대폭 줄어든다. 장애인은 만 65세가 되면 다시 시설로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니,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국가의 법과 제도가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함에도 장애인의 삶은 철저하게 제도 안에 가두고, 제도가 정한 대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월 7일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 운동본부 발대식'을 가졌다. 오랜 숙원이었던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6년쯤 일이라 기억한다. 장애인복지론 수업시간에 교수가 강의실을 들어서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시위를 해야 하냐는 거다. 본인이 교통정체를 겪어 화가 났던 모양이다. 장애인복지론 교재까지 집필한 나름 저명한 교수였지만 장애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동등한 시민으로 여긴 적도 없던 것 같다. 국민을 존경한다고 말로만 하는 위의 정치인들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덕분’인지 아직까지도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2020년에도 비장애인에게 단순한 선택의 문제인 이동수단이 장애인에게는 싸워 쟁취해야 하는 권리인 것이다.

장애인 권리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이제 OECD의 다른 국가와 비교하며, 한국의 낮은 수준을 재확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시민의 위치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동료 시민들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차별에 함께 저항하며, 그들이 시민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7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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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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