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최성윤 인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요즈음, 내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이다. 이처럼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장악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러하고, 나의 직업적 신분도 그러하다.

나는 '불안'하다

고령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엄마와 시아버지가 있고, 이제 갓 24개월을 넘긴 아이가 있는 나에게 코로나19는 두렵고 불안한 존재이다. 뉴스에서는 날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비상 속보를 새빨간 글씨와 함께 쏟아내고 있고, 마트 대신 즐겨 사용하던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는 품절로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팬데믹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WHO도 팬데믹을 선언했다.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바이러스 코로나19. 그러나 나에게 바이러스에 걸려 아픈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상이 파괴되는 것이다.  

세미나, 회의, 출장 등 예정되어 있던 일정들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어린이집 휴원 이후 아이와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냈다. 우리 집 거실 창에서 놀이터를 내려다보며 "놀이터 가, 놀이터 가"를 외치는 아이를 보면, 어른들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아이들이 치르는 것 같아, 미안하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코로나19로 남편의 피로도도 높아졌다. 시설 관리 일을 하는 남편은 3일에 한 번꼴로 밤샘을 한다. 생체리듬이 일정하지 않아, 낮 시간에 아무리 숙면을 취한다 하더라도 만성피로에 시달리는데, 어린이집 휴원으로 아이가 집에 있다 보니, 숙면은커녕 잠을 잘 시간 확보조차 어렵다. 이것이 코로나19로 변화된 우리 가족의 일상이다. 

코로나19만큼 나의 일상을 직접적이고 상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먹고사는 문제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프리랜서다. 정기적인 월급 없이 보통은 강사비, 연구 프로젝트 인건비, 심사비 등으로 돈을 번다. 불확실한 수입에 대한 불안은 한 해의 일이 마무리되는 12월과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3월 사이 극대화된다. 매년 이맘때 즈음 남편과 나 사이 똑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올해는 뭐하고 먹고살지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쏟아내는 나에게 남편은 "너, 작년에도 똑같이 말했어"라고 짧게 대답한다. 코미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 일이 매년 반복된다.  

 


내 존재의 정당성과 돈벌이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로 시작된 질문은 생계의 문제를 넘어, 내 존재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으로 변화한다.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무엇을 하며 돈을 벌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무엇을 하며 돈을 벌 것인가? 라는 질문은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그 일이 이 세상에 쓸모가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이런 질문의 변화 속에서 마지막에 이르는 곳은 내 존재의 정당성이다. 그리고 이 종국의 질문은 다시 첫 번째 질문, 돈을 벌 수 있을까?로 회귀한다. 즉 나라는 사람의 쓸모,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내가 잘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 일인가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는가?'라는 회한과 자책까지 몰려온다. 생계의 불안이, 좀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기 자책으로, 더 나아가 자존감의 손상으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의 훼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과도하게 염려와 걱정이 많은 나의 기질적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사회조사 결과와 2018 경기도 사회조사 보고서를 보게 되었다. 그 보고서들이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처럼 불안해하는 것은 내 기질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점이었다.

2018 경기도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 자녀가 있는 가정의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50.4만 원이었고, 너무나 예측 가능하게도 가구의 소득이 올라갈수록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도 올라갔다. 그런데 이 통계자료에서 뜨악할 정도로 놀라웠던 것은 가구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를 33,3만 원을 쓴다는 것이었다. 몇백을 버는 것도 아니고,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에서 사교육비로 33.3만 원을 지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소비이다.  

 

▲ 2018 경기도 사회조사 보고서.

 

 


우리 '모두' 불안하다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며 사교육비를 감당하고 있을까? 사교육을 받는 이유에 대해 41.0%가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서'였고, 18.6%가 '남들이 하니깐 안 하면 불안해서'로 나타났다. 남들이 하니까 안 하면 불안해서라는 응답은 사실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서라는 응답의 변주이다. 결국 생계를 희생하면서까지 과도하게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이유는 남을 이기기 위함이고, 남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 2018 경기도 사회조사 보고서.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불안하게 하길래, 이렇게 기를 쓰면서 남을 이기려 들까? 이 이유는 2019 사회조사 결과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2019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 적성, 흥미 그런 것들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수입(38.8%)이었고 다음으로 직업의 안정성(25.6%)이다. 

▲ 통계청, 2019년 사회조사 결과.


많은 사람들이 고소득의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직장은 매우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수요는 많으나 공급이 적으니, '좋은' 직장에 대한 경쟁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소위 스카이대로 불리는 서울 명문대의 졸업장이고, 그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사교육에 미친 듯이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여느 사회 어떤 분야에서건 경쟁은 존재하고, 또 모든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문에 경쟁의 존재가 우리가 가진 불안이나 지나친 승부욕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려는 이유는, 경쟁에서 진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심하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의 33%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68.3%밖에 미치지 못한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노동자의 임금(231만 원)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501만 원)의 절반도 안 되는 46.1%이다(통계청, 고용노동부 자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과도한 격차는 왜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 하는지 보여준다.  

 


더 중요한, 덜 중요한 노동이 있을까? 

이러한 과도한 경쟁구도가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 양자 모두에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른 어떤 보상이나 처벌도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어느 고위 공무원의 민중은 개, 돼지라 발언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과주의에 기반한 이러한 정당화는 우리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을 잊게 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 중 더 중요한 노동과 덜 중요한 노동이 있는가? 더 중요한 노동과 덜 중요한 노동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더 중요한 노동이 있다면, 그 자리에 가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가?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개인의 노력의 결과인가? 라는 등의 질문들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다. 분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화조 청소 노동자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가 싼 똥조차 치울 수 없다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법관, 고위공무원, 각종 전문가 등을 선발하는 각종 자격시험들이 그 직에 적당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역할 제대로 하고 있다면, 이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조건과 성장배경을 갖는다. 모든 사람의 출발선이 이처럼 다른데,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매일 매일 먹고사는 일에 매몰되어 불안한 상태에 놓인 사람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를 너무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성과주의가 불평등, 불공정함이 가진 진짜 문제를 가려버리기도 한다. 혹 누군가가 냉철한 판단력으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불공정함에 대한 각성하고 저항하려 한다 한들, 당장의 생계라는 현실적 벽 앞에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먹고살기 위해 부당함을 감내하거나이다.  

 


사회안전망,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여유와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생계에 대한 불안의 그늘을 지워 내야 한다. 이런 불안의 감소는 결국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복지의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뒷받침 속에서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때,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문제제기가 가능해지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이들의 문제제기와 저항에 의해 해결 될 것이다.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복지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84552

 

"올해 뭐 먹고 살지?"..."작년에도 똑같은 말 했어"

요즈음, 내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이다. 이처럼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장악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러하고, 나의 직업적 신분도 그러하다. 나는 '불안'하다 고령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엄마와 시아버지가 있고, 이제 갓 24개월을 넘긴 아이가 있는 나에게 코로나19는 두렵고 불안한 존재이다. 뉴스에서는 날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비상 속보를 새빨간 글씨와 함께 쏟아내고 있고, 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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