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 위기가 소환한 해묵은 숙제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어떤 시스템이 일상적이지 않지만 발생 가능성이 있는 과도한 부담에 직면했을 때 어느 정도 성능을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한 시스템의 안정성은 평상시보다는 위기 시에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각 국가들에게 스트레스 테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 테스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중간성적표에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늘 '선진국'으로 생각하던 국가들에서 의외로 취약점이 나타나는가 하면,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생각 이상의 저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성적표도 다른 모든 성적표와 마찬가지로 과목별 성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감염병 대응 못지않게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의 대응이 갖는 중요성이 커지기에 더욱 그렇다. 

 

노동시장과 사회보장 영역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이 좋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한 과목이다. 고질적인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주변부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여파를 집중시키고 있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는 사회보장 부문은 위기에 직면한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22일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통해 이에 대응하고자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충분한 대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로나 위험의 불평등 

 

위기는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다. 코로나 위험 역시 마찬가지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코로나 시대에 미국에서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잊힌 노동자'의 4개 계급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이들 사이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재택근무의 '불편'을 감수하면 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득이 완전히 끊어져 생계가 막막한 이들도 있다.

 

최근 발표된 '2020년 3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잘 보여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사업체 종사자 수는 약 1827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2만 5000명 감소했다. 동 조사에서 고용부문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래(2009년 6월) 처음으로 전년 동월 대비 종사자 수가 감소했다. 

 

이 점도 충격적이지만 어디에서 감소가 나타났는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위험의 불평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종사상지위별로 살펴보면 상용직이 전년 동월 대비 8000명(-0.1%) 감소한 것에 비해 임시일용직은 12만 4000명(-7.0%),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 등을 포함하는 기타종사자는 9만 3000명(-7.9%) 감소하여 고용 충격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업체규모별로 볼 때도 300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24만 4000명(-1.6%) 감소한 것에 비해 300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는 2만 9000명(+1.0%) 증가하였다. 고용 위험이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는 불안정 노동자"에게 집중된 것이다. 특히 임시일용직보다는 기타종사자의 감소비율이 더 크다는 것은 고용보호법제 밖에 있는 비임금노동자의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종별로도 위기의 정도가 다르다. 가장 크게 감소한 업종은 전년 동월 대비 15만 3000명이 감소한 숙박 및 음식점업(-12.0%)이며, 10만 7000명 감소한 교육서비스업(-6.7%), 3만 9000명 감소한 예술·스포츠 및 여가관련서비스업(-11.9%), 3만 8000명 감소한 사업시설 및 임대서비스업(-3.3%), 3만 4000명 감소한 도매 및 소매업(-1.5%)이 뒤를 잇는다. 이 업종들은 여행, 관광, 공연 등 코로나의 1차적 영향이 가장 두드러진 서비스 업종이며, 대부분 전체 업종 대비 임시·일용직의 비중이 높고, 자영업 등 비임금근로자 비중이 크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의 직접적인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제조업 역시 1만 1000명(-0.3%)이 감소했는데, 향후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여파가 커질 우려가 있다. 

 

사업체노동력조사에는 일부 노동인력이 포함되지 않는데, 고정사업장이 없는 하도급자에게 소속된 건설노동자, 가정 내에서 일하는 가사서비스업 노동자, 제조업에서 가내도급자 등 사업장 단위에 소속되지 않은 종사자, 고정사업장이 없는 자영업자(대리운전, 노점상 등)들이 그 예이다. 이들 역시 코로나 위기의 영향을 많은 받을 것이 자명한 불안정 노동계층이기에 사업체노동력조사로 살펴본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실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고용안전망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 위기가 집중된 이들이 대부분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고용안전망의 중추가 되는 제도는 고용보험인데, 고용보험은 비임금근로자 대부분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세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는 고용상의 위기에 처해도 고용보험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임금근로자 중에서도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이들은 코로나 위기에 크게 노출된 이들이다. 앞서 임시일용직과 중소기업종사자의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19년 8월)에 따르면 임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0.1%, 일용직은 5.5%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가입률(70.9%)에 비해 크게 낮다. 산업별로도 코로나 위기에 크게 직면한 숙박 및 음식점업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3.9%, 교육 및 서비스업은 49.2%,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은 52.3%로 상대적으로 고용보험 가입비율이 낮다. 

 

고용보험이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자만을 보호한다는 문제를 지적 받은 지는 오래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제도개혁을 제 때 수행하지 못했고, 그 결과 코로나 위기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문제가 크게 드러나고 있다. 위기에서 가장 큰 위험을 겪는 것은 노동시장 약자고,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것도 노동시장 약자이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의 이와 같은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국민취업지원제도'(이른바 '한국형 실업부조')이다. 그러나 7월 도입이 계획되어 있는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의무지출 대상이 중위소득 50% 이하로 매우 좁게 설정되어 있으며, 급여 역시 6개월 50만 원에 불과해 실질적인 생계지원이 되기 어렵다. 그나마도 20대 국회에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근거법률의 통과가 되고 있지 않아, 계획대로 실행될지 의문이다. 

 

 

고용안정 특별대책과 그 한계 

 

정부 역시 코로나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관계부처합동으로 발표한 '일자리 위기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이하 '안정 대책')이 대표적이다. 안정 대책 중 기업이 아닌 개인에 대한 직접지원으로는 총 10.1조 원 규모의 고용안정패키지를 추진하여 288만 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① 소상공인・기업 고용유지 지원(52만 명, 0.9조 원), ② 근로자 생활안정 대책(93만 명, +1.5조 원), ③ 긴급 일자리 창출(55만 명 +3.6조 원), ④ 실업자 지원(86만 명, +4.1조 원)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고용유지 지원과 관련해서는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확대, 무급휴직 신속지원 프로그램, 고용유지 자금 융자, 고용유지 협약 사업장 인건비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근로자 생활안정 대책으로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특고·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 무급휴직자 지원이, 긴급 일자리 창출에는 공공 및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실업자 지원에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생계비 융자, 직업훈련 생계비 대부, 취업성공패키지 확대, 실업자 직업훈련 확대 등이 포함됐다. 

 

정부의 대책을 한 마디로 평가하면 '올바른 방향, 부족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대한 대응, 일시적인 경제위기 시에 중요성이 큰 고용유지에 대한 내용, 그리고 정부의 '최종고용주'로서 역할 강화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규모는 부족하다. 현재 고용상황을 고려하면 10.1조 원이라는 총규모가 부족할 뿐 아니라, 연구에 따라 166만 명에서 200만 명 이상으로도 추정되는 특수형태근로의 비중을 고려할 때 영세자영업, 특고·프리랜서를 포함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지원의 규모가 93만 명이라는 것도 과소하다. 또한 고용유지지원에 간접고용노동자를 어떻게 포함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과감한 위기대응과 장기적 체질개선이 함께 필요하다! 

 

물론 코로나 위기에 대한 대응이 한 번의 대책으로 끝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추가적인 추경을 통한 대응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방안들은 부족하다. 위기에 대한 지원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 '신속성'임을 고려하면 당장에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

 

우선 고용유지지원을 위해서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 혹은 계약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몇 년 전 조선업 위기에서 본 것처럼 다단계 하청구조를 가진 산업에서 위기 시 먼저 잘려나가는 것은 외주·하청이며, 직접고용 노동자의 고용위기는 그 후에 닥쳐온다. 따라서 고용유지지원에서 간접고용노동자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일시적으로라도 조건을 과감하게 완화한 실업급여 지급이 필요하다. 가구 단위로 지원 예정인 긴급재난지원금은 그 대상, 금액, 지원의 일시성을 고려하면 생계지원보다는 경기부양 수단에 가깝다. 코로나 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실업급여다. 그러나 현재의 실업급여는 가입의 사각지대, 피보험 단위 기간의 충족, 실업의 사유 등으로 인해 지급 대상이 제한적이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구직활동지원금', '생계비 대부', '취업성공패키지' 등은 모두 실질적인 생계지원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소득 및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음을 증명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특고·프리랜서, 영세사업장 무급휴직자 지원 또한 마찬가지다. 한시적으로라도 소득이 감소하거나 일거리가 떨어진 이들에게, 최소한의 행정적 확인 절차로 더욱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좀 더 장기적으로 고용안정성을 보편화할 수 있는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고용보험과 실업부조를 '모든 일하는 사람의 고용안전망'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영세자영업자, 특고, 프리랜서 등을 고용보험으로 포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보험 기여금을 모든 소득·매출(이윤)에 대해 수취하고, 급여를 부분실업을 포함하는 소득의 급격한 감소나 상실에 대해 지급하는 조세-소득 기반의 고용보험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소득파악 인프라 확보, 기여수취의 형태, 급여지급의 기준 등을 마련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지금부터 방향을 정립해서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한국형 실업부조는 실업급여를 수급하지 못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급여의 지급기간이나 수준 역시 생계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 높여가야 한다. 

 

네 번째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 복지국가들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질병 및 부상으로 인한 치료를 받을 때 상실되는 소득을 보전하는 현금수당인 상병수당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감염병 위기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현금수당이 없는 반쪽짜리 제도다.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많은 이들이 감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터로 나가야 하거나 자가격리 중 소득이 감소하는 등의 문제를 경험했다. 향후 이와 같은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상병수당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로는 이번 기회에 '최종 고용주'로서의 국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제제도를 재조정하는 것은 노동시장 약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중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의 위기에서 정부는 직접 일자리 창출 확대를 대책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대부분이 일시적인 허드렛일자리들이다. 물론 위기 시에는 일시적인 일자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좀 더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일자리는 시장이 만드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일례로 현재 고용센터 현장은 고용유지지원금 관련 업무가 급증하여 인력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의 연구들에서 한국의 고용센터 인력이 부족한 것이 고용서비스의 질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음을 고려하면, 이참에 과감하게 인력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할만하다. 이는 다른 사회서비스 영역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일자리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정부가 책임지는 질 좋은 일자리를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만들어가는 것도 지금의 코로나 위기가 소환한 우리의 해묵은 숙제 중 하나다. 

 

 

위기를 교훈으로 

 

이미 코로나 위기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마당에, '위기를 기회로'라거나 '위기 뒤의 찬스' 같은 말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영역들이 드러난 것은 분명하며,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 또 다른 위기에서도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로부터 퍼져나가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적극적이고 과감한, 그러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011153548307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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