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청년 부양의무자가 본 부양의무자 기준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




나는 부양의무자다

잊고 살다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아버지의 부양의무자다. 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이므로 나의 소득과 재산은 감시의 대상이다. 나의 소득이 월 250만 원 이하일 때만 아버지의 수급권이 유지된다. 주민센터에서 전화라도 오는 날이면 종일 마음이 어수선하다. 며칠 전에도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저소득층 한시 생활지원금을 받아 가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요양병원에 계시고 쓸 일 없을 거 같아요. 안 받을게요." 전화를 끊고 아차 싶었다. 배부른 사람처럼 행동했나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배부르기보다 점점 더 배고파지는 와중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잡혀있던 일들이 모두 뒤로 밀렸고, 아버지가 입원해있는 요양병원은 출입을 최대한 자제했다. 바깥바람이라도 쐬지 못하는 아버지는 병실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나눌 것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요양병원은 감옥과 다름없었다. 내 수입은 끊겼는데 아버지에게 지출은 수급자 생계급여를 훌쩍 넘는다. 그 언제보다 저소득층 한시 생활지원금이 필요한 때다.

주민센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집까지라도 가서 전달하라는 지침이 떨어졌으니 꼭 받아 가라고 했다. 결국 주민센터로 갔다. '부정 수급 신고' 복지 상담 창구 앞에 붙어있는 문구에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버지가 수급자가 된 후 최대한 주민센터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였다. 혹시라도 내가 맛있는 거라도 먹고 있으면 누구 신고할 거 같고, 고가의 장비로 영상 편집이라고 하는 모습이 보이면 부정 수급 아니냐는 추궁할 것 같은 기분 탓이었다. 여태껏 신고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마음속에서 검열하는 내 모습에 기운이 빠진다. 그런 모습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아서 주민센터에 안 갈 수 있으면 최대한 안 가고 또 안 간다.

 

 

나의 의무와 아버지의 권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누구나 경제적으로 힘들면 지원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 모두 기초적인 생활 보장이 안 되면 신청할 수 있다. 수급자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수급권자다. 국가에 의해 현금을 지급받을 권리인 수급권. 국가의 시혜적 측면을 부각하는 '피보호자'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서 '수급권자'. 시민운동의 결과로 얻어진 이름이었다.

누구나 수급권이 있지만, 아무나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급자가 될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지만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수급 빈곤층이라고 한다.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수급 빈곤층은 93만 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비수급 빈곤층의 67.3%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을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2019년 서울시복지재단의 서울생활실태조사에서 저소득층의 40.8%는 '정보 부족'으로 신청조차 해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도 20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받았고, 응급실로 달려갔고,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대학병원에서 큰일을 치르고 나서야 '의료비'가 무서운 거라는 걸 깨달았다. 집 안에 누가 아프면 가계가 휘청거린다는 말이 실감 났다. 아버지가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면 보증금이, 내 적금이, 다음 달, 다음다음 달 월급이 사라졌다. 치료와 돌봄은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쓰러진 이후 아버지의 건강도, 사회적 재기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내가 치료와 돌봄에 얽매여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수급자의 조건을 갖췄음에도 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건 오로지 내 소득 때문이었다. 돈을 모았다 싶으면 다시 아프고 다치는 아버지를 부양하느라 내 통장은 바닥을 모면한 적이 없었다. 나도 살아야 했다. 남들처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며 진로를 정해야 했고, 쌓이는 경력에 따라 생애의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싶었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아버지가 서둘러 죽음을 맞거나, 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영화 연출을 배우고자 일을 관두었을 때, 나의 의무와 아버지의 권리는 충돌했다. 그때 아버지의 건강을 지독히도 신경 썼다. 또다시 아파서 막대한 병원비를 쓸 일을 만들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육체 건강만큼이나 정신 건강도 중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아버지의 치매가 시작되고 나서야 뉘우쳤다. 생계도, 진로도 모든 게 마비되었고 아버지가 수급자라도 안 되면 정말 할 수 있는 거 없었다.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얻었다. 부양의무자로서 나의 소득은 적었고 재산도 없었다. 아버지가 수급자로 등극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앞에서 존중은 부정당한다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펴냄) 출간 이후 많은 이들이 위에 언급한 내 생활을 알게 되었다. 몇몇은 임금을 줄 때마다 이렇게 묻는다. "소득 괜찮아요?"

그럼 나는 '아직'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나 임금 외에도 예술작품지원사업으로 시상금을 받을 때면 한 번씩 내 소득을 따져본다. 생계비나 주거비도 아니고 저축도 못 하는 예술작품 제작비가 소득으로 잡혀서 월 250만 원을 초과해버릴까 싶어서다. 무엇보다 월 250만 원으로도 아버지의 병원비와 생계비를 충당하며 미래의 안정을 도모하기엔 빠듯하다. 이 모든 걱정이 '가족관계해체 사유서'를 쓰면 다 끝날 일이다.

 

"가족관계 해체 상태로 정상적인 가족기능을 상실하여 경제적·정서적 부양을 기피하고 있는 부양의무자나 수급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참고하셔서 구체적 사유서를 작성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족관계해체 사유서의 안내문은 '정상'이 아닌 가족관계를 증명하면 권리를 주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너 스스로 부양의 도덕을 수행하지 않는 부도덕함을 시인하라는 모멸 테스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한 장으로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이 양립할 수 있다면 써야 할 것이다.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까지 망해간다고, 아버지의 무능 사례를 한 번 쫙 읊어보겠노라고, 정상 가족에 얼마나 멀리 떨어진 가정이었는지 세세히 보여주겠노라고.

 

부양의무자 기준 앞에서 내가 10년간 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이유는 부정당한다. 이혼 후에 어찌어찌 살아보려고 했던 한 가장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아프고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신체적이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윤리가, 10년간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돌보지 않았다면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성찰이, 기초생활보장제도 밖 현실의 파도 앞에서 한없이 작은 방파제임을 알게 된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아버지의 존엄보다 수급권 탈락의 불안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 농성장에서 1842일간 이어졌고,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20)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될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올해 하반기 '완전' 폐지의 마지막 단계를 볼 수 있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이 발표된다. 당장 자기 일인 사람은 물론이고,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도 지켜볼 만하다. 거주지명이 덜렁 붙었다가 사그라지는 일가족의 죽음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느낀다면 꼭 주목해야 한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보건복지부가 2차 종합계획을 두고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언급하지 않고 '생계급여 등'으로 표현한 것을 지적했다. 이미 교육급여와 주거급여가 폐지된 것처럼 생계급여도 폐지될 듯하지만 의료급여는 미지수다. 의료급여는 가장 많은 재원이 든다. 하지만 의료비와 간병은 빈곤의 지름길이다. 재원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어떤 기능을 해왔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꼴이다. 1차 종합계획에도 쓰여있듯, 보건복지부는 가족 간 부양의식의 약화됐고 노인 빈곤이 심화됐으며 청년에게 빈곤이 대물려지는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자의 적정 개체 수를 관리하는 장치였을 뿐이다. 이제껏 정말 좋은 효과를 내왔던 셈이다.

현 복지부 장관은 연구자 시절인 2000년 발표한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복지정책'에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여전히 수급자가 전 인구의 3%밖에 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수급자를 이 정도의 규모만 용인하려는 사회적 갈등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불평등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불안정 노동이 더 늘어났고 일가족 죽음이 여기저기 벌어져도 2018년 인구 대비 수급자 수는 3.4%에 불과하다. 어쩌면 사회적 갈등구조의 중심은 경제적인 연대조차 불가능한 가난한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강제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아닐까?

 

 

부양의무자 기준의 존재 자체가 반성과 비판의 대상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복지의 수요와 공급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없애는 것 이상이다. 이제까지 한국을 만들어온 근대화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지난날 한국은 가족 내 분배, 투자, 부양의 책임에 기대어 산업화에 성공했다. 민주화에 접어들면서 경제성장의 결실을 분배할 시기가 되었지만, 복지의 확충보다 가족 부양의 재편이 이뤄지고 말았다. 사회학자 장경섭은 책 <가족·생애·정치경제>(창비 펴냄)에서 1980~90년 대중교육, 상업 매체, 정부 발표를 통해 핵가족화된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비판이 강조된 흐름을 지적한다. 한국의 공공부조제도 역사에서 부양의무자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도입된 조선구호령 때부터 존재했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된 기저에는 가족에게 부양의 책임을 전가해온 근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는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빼고 설명하기 쉽지 않다. 경제학자 조귀동은 한국의 불평등을 '세습 중산층 사회'라고 명명한다. 그는 책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 펴냄)에서 86세대 부모의 학력, 자산, 사회적 지위 등이 90년대생 자식에게 세습되고 있음을 규명한다. 저성장 시기 청년 실업과 가족 부양이 만나면 부모의 빈곤이 자식에게 대물림될 뿐 아니라 자식의 빈곤이 부모에게 대올려지는 상황도 초래된다. 비혼, 만혼, 저출생은 가족에게 부과된 과도한 의무의 결과이며, 고령화는 가족 부양을 더 가중시킬 조건이다.

이 정부가 진정 혁신적 포용국가라면 이러한 맥락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존재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위키 홈페이지에서 설명해놓았듯, 포용국가는 "소득, 의료, 돌봄 등 삶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경제 성장의 과실이 사회 구성원에게 고루 분배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국가의 모습을 하반기에 발표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속에서 만나고 싶다. 2차 종합계획이 끝나는 2024년에는 문득 떠올려보련다. 가난한 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허무맹랑한 역사를. 그리고 이 세상이 더 포용적으로 진전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하반기 발표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2610223548472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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