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한국형 '주거체제' 만들기 : 전세 이후를 대비하자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



 

 

 

2020년 여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제도 도입으로 '계속 거주권'을 향한 첫발을 떼었다. 계약기간이 2년으로 정해진 1989년 이래 31년 만의 쾌거다. 갱신권의 실효성을 위해 임대료 인상률 규제도 제한적으로(5%, 2년 이내) 도입했다. 무기계약도 자연스러운 외국의 경우에 비하면 만시지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입자 주거권을 향한 큰 진전이다.

 

정부의 여러 부동산 대책 발표의 와중에 개정안이 통과되어 한편 졸속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사실 주거권 단체들의 오랜 숙원이었고 19, 20대 국회에서도 논의되었던 사항이다. 추진계획이 번복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입장이 엇갈린 다른 정책들과는 궤가 다르다. 어쨌든 임대인 입장에서 전셋값을 마음대로 못 올리면,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고, 이에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그런데 전세는 이미 감소하던 추세였다. 집값 상승이 둔화되고 신규개발지가 고갈되면 임대인으로서는 전세 보증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지니, 월세를 선호하게 된다. 세계에서도 독특한 역할을 하던 전세는 어차피 차츰 소멸해갈 운명이었다. 그리고 과연, 애초에 전세가 '주거 사다리'이긴 했는가? 

 

 

전세! 주거 사다리였는가, 불평등의 증폭기였는가 

 

'전셋값 올리는 임대인을 만나라'는 격언이 있다.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말이라고도 하지만 전세의 강제 저축 효과에 대한 웅변이기도 하다. 때때로 오로는 전세금을 충당하고자 빚을 내서라도 기를 쓰고 채워, 차츰 '주거 사다리'를 올라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한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거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 사다리는 사실 미끄럼틀에 더 가까웠다. 1995년과 비교해 2019년에 전체 주택 점유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9.7%에서 15.1%로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월세 비중은 14.5%에서 23%로 늘었다. 개개인의 사연들이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단순화해 보면, 전세가 사다리였다면 이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4.5%포인트) 보다 월세로 내려간 사람들(10.1%포인트)이 2배가 넘는다. 한편, 혹은 덕분에, 다주택자들과 그들의 보유 주택수는 2012년 통계발표 이후 계속 느는 추세다. 

 

전세 세입자들이 '주거 사다리'를 오를 꿈을 꾸는 동안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늘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강제 저축'하고 있는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이다. 전월세 전환율보다 대출 이자율이 낮으니, 대출받아서라도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세입자로서 유리한 것은 일면 사실이다. 그러나 전세는 레버리지 투자의 종잣돈을 굴린 다주택자들에게 훨씬 더 유리했던 것이다. 전세자금 대출제도도 세입자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다주택자들을 위한 장치다. 자가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경우와 비교해 보자. 현재 자가 마련을 위한 LTV 규제는 주택가격의 40%까지다, 즉 5억짜리 집을 사고자 하면 2억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 이자는 집주인이 내야 한다. 3억의 자기자본 투자와 2억에 대한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전세'를 끼고 살 때는 어떨까. 전세 가격을 주택가격의 80%로 설정했을 경우, 임대인(혹은 갭투자자)은 1억 원의 자기 돈과 4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끼고 5억 원짜리 집을 살 수 있다. 전세보증금을 위한 대출은 전세 가격의 80% (신혼부부는 90%)까지 가능하다. 결국 집주인이 5억원의 집을 마련하는데 세입자가 80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3억2000만 원은 자기가 대출이자를 내면서 빌려준 셈이다. 임대인에게 이렇게 좋은 투자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또 어디 있을까.

 

운용소득 측면에서는 월세보다 불리한 전세를 임대인이 선택한 이유는, 주거복지 차원에서 세입자가 전세를 활용해서 주거 사다리를 오르라는 배려가 아니다. 집값 상승 구조에서나 작동 가능한 전세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 보증금 덕분에 세입자가 나중에 사고 싶은 집은 더 비싸지는 시스템에 세입자도 동의하고 합류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지는 것'이야말로, 임차인에게는 월세보다는 안정적이고 유리했던 전세가 작동 가능했던 비결이자 대가다. 

 

그런데 임차인과 임대인의 '전세 동맹'이 기실 소유의 양극화에 기여했다고 해서 당장 전세가 월세화되는 것을 마냥 대세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월세화를 인위적으로 막는 방법으로 전월세 전환율을 법으로 정할 것인지도 그렇다. (전월세 전환율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신용에 민감한 전세와, 임대인이 임차인의 신용에 민감한 월세 사이에서 공실 리스크와 미납리스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함수다) 아직 확신까지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월세 전환율을 강제하기보다는, 월세 패러다임에서 필요한 주거 보조비 확대와 표준임대료 제도를 차분히 준비하면서, 세입자와 세입자 조직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고, 한국의 독특한 주거체제의 핵심 요소였던 전세를 대체할 점유 형태를 모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주거체제 변화, 혹은 전환의 방향 두 갈래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는 주거체제론의 연구는 에스핑-앤더슨의 복지체제론을 주택에 적용한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의 분류 외에도 '지중해 복지국가 레짐'과 '동아시아 생산주의 복지국가 레짐'이 논의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부동산 투기 근절되면 우린 집을 살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 전후 형성된 동아시아적인 '생산주의' 복지체제가 1990년대 후반 이후 '자유주의' 복지체제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연구도 있고, 한국의 주택체제(주거체제)가 가진 동아시아적 생산주의 특성은 향후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 중 하나로 접근해가거나,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형 주거체제의 핵심에 있었던 '전세'의 역할과 위상에 큰 변화가 오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주거체제라는 것이 만고 불변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전세'의 역할과 위상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사실 사회주택이나 영속형 공공임대주택과 같이 시세차익을 추구하지 않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전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보증금이 부채로 계상되어 경영 평가에서 감점 요인이 되거니와, 실제로도 목돈을 받는 것 보다 합리적인 수준의 월세를 받는 것이 사업성 측면에서 더 유리하고, 보증금 보호 및 반환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형 기본주택이 월세 중심의 재무 구조를 채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로서도 한쪽에서는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유지하며 다른 쪽에서는 집값을 잡겠다고 쩔쩔매느니, 월세체제에서 주거비 보조를 확대하고 임대료 규제를 따르는 공급자를 지원하는 게 낫다. 

 

어차피 당장 집값이 조금 떨어지고 대출 규제가 조금 완화된다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계층은 극소수다. 가계부채 상황이 심각하니 대출 규제를 쉽게 완화해주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대응 방향은 두 갈래, 전세의 흡수와 월세의 안정화다. 전세는 과거 금융 위기에서 일종의 완충 역할을 했다. 당장 수입이 없어도 임대료를 못 내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08년에 비해 월세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이번 팬데믹 위기에서는 그래서 주거 위기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월세 거주 1인 가구의 자살률이 심각한 수준이다). 줄어들고 있는 전세를 대체하고 기존의 월세를 안정화하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전세에서 월세로 몰리는 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환매조건부(지분공유형)' 주택을 '지분적립 방식'으로 공급하여야 한다. 당장 주택가격의 전부를 내지는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방식이다. 시세차익이 개개인에게 귀속되지 않으며, 보증금(또는 지분)이 다주택자들의 재투자의 종잣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주택이 시민자산화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입주자 협동조합의 소유가 된다면, 임대와 소유의 이분법을 넘는 하이브리드 방식도 가능하다. 공공이나 사회주택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전세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사실 더 시급한 것은 월세 쪽이다. 전세는 이미 대도시 아파트 위주로 남아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전세가 월세화되니 큰일이다'는 이야기는, 월세가 이미 한참 전부터 자연스러운 계층에게는 '호들갑'이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들을 위해서는 (효과를 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공급정책만으로는 부족하고 파격적인 임대료 보조 및 규제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일반 시장임대에도 임대료 규제가 도입된 것은 전후 복구 시기와 같은 비상한 상황에서였다. 현재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로 많은 이들이 '임대료 동결·유예'를 외치는 상황은 이에 못지않은 비상한 시국이다. 

 

주거 보조비만 확대하면 월세가 오른다. 군인 월급이 오르니 위수지역 모텔비가 오르고, 교복비를 지원하니 교복값이 오르며, 동자동 쪽방촌의 월세가 주거 바우처 액수만큼 오르는 것이 실제 사례다. 따라서 주거 보조비 지급이 실제 주거비 절감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도 임대료 규제는 병행되어야 한다. 

 

물론 임대료 규제는 장기적으로 공급을 위축시켜서 오히려 임대료가 더 비싸지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임대료 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성실하게 주택을 공급·관리하는,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의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야 하는 이유다.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만큼 공급을 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당분간은 임대료 규제로 위축되는 정도나 그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만 공급해도 충분하다(사실 임대료 규제를 준수하고 양질의 주택을 제공한다면 사회주택사업자뿐만 아니라 영리사업자들에게도 LH나 SH에게 하는 만큼의 공공지원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주택 공급, 주거비 보조, 가격 규제, 다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는 3단 순환 사이클을 작동시켜야,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다.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을 위한 공공주택 유형통합의 필요성 

 

앞서 말했듯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은 공급에 시간이 걸리고, 토지와 예산확보의 제약으로 당장 대상 계층을 다 소화할 만큼 지을 수가 없기에, 운 좋게 입주한 이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그나마도 지난 30여 년간 정부와 단체장별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추가하는 바람에, 십수 가지의 복잡한 유형과 임대료 체계가 병존하면서 '같은 형편인데도 다른 임대료'를 내거나 '다른 형편인데 같은 임대료'를 내게 되어,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이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입주자 대기리스트도 없고, 브랜드마다 입주 자격도 달라서, 입주 가능 여부와 시기를 파악하기가 어려워 이를 안내하는 것이 주거복지센터의 주요 업무가 될 정도다. 한국형 주거체제가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될지는 주거 외에도 사회보장, 교육, 의료 등 복지국가의 다른 기둥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이 되겠지만, 무엇이 되더라도 이러한 '유형의 난맥상'과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의 결여'는 극복하는 방향이 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주거체제론적 차원에서 주거 중립성을 제고하고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관건임은 이전 칼럼에서 밝혔다. 주거체제의 성격은 임대주택을 당장 몇만 호 더 짓는 문제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시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준의 '비영리 부문'의 물량은 필요할 것이며, 따라서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극복하고자 사회적 경제 부문 혹은 제3 섹터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주택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 부문 혼자서 물량을 달성하려는 것 보다, 사회 부문과 협력할 때 오히려 전체 파이가 쉽게 커져서 공공 부문의 물량 달성도 용이해질 것이다.

 

비영리 부문의 지속적 확대를 전제로, 4단계 전략을 제시한다. 먼저 지금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①공공주택 유형통합을 궤도에 올려야 한다. 일단 공공임대 부문 내에서라도 수평적·수직적 형평성이 실현되도록 하는 방책이다. 임대료체계가 통일되고, 대기 명부 운영이 가능해지는 대신, 일부 평균이하 저렴한 임대료체계의 주택은 임대료가 인상되게 되는 바, (제한적인) 주거 보조비를 통해 주거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 현재는 신규단지에만 유형통합을 배치하는 방침이라고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모두를 포함시켜나가야 한다. 경기도형 기본주택이 현실화된다면 이 유형통합에 같이하거나, 모두가 경기도형 기본주택으로 통합되거나 해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더 이상 정치인마다 차별화를 위해 브랜드를 추가하는 '무차별한' 방식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다음으로 공공주택과 함께 임대료 규제를 준수하는 '비영리' 부문의 공급생태계의 저변을 확대다. 즉 ②사회주택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입주자 입장에서는 유형이 통합되어도 공급 생태계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은 비영리 부문의 이미지 제고와 주택 품질 개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는 '사회적 경제'의 성장과 밀접히 연결되어있는 과제이며, 도시재생이나 커뮤니티 케어, 스마트시티 등 관련 분야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발전해갈 수 있도록 부문 간 협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비영리 부문 유형 통합의 체계가 정비되고 어느 정도 물량을 담당하게 되면, 혹은 이 과정과 병행하여, ③민간임대시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네덜란드처럼 일정 임대료 수준 이상의 고급 임대주택은 굳이 '강행규정'으로 규제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일정 기준 이하에 대해서는 '보편적' 임대료체계를 공-사-사 (公-社-私, Public-Social-Private) 부문을 막론하고 적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여기엔 물론 ④주거 보조비의 대중적 확대가 결합되어야 한다. 주거 보조비는 지급의 상한선을 설정한 뒤, 계층별 주거비 부담률을 일단 같은 계층 내에서는 차이가 없도록 주거 보조비 액수를 예산 내에서 편성하고, 차츰 예산을 늘려나가야 한다. 주거 보조비 지급 상한선을 올릴 것인지, 계층별 주거비 부담률을 전반적으로, 혹은 저소득층부터 낮출 것인지는 추후 논의 과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61718061735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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