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 이웃의 안부를 묻는 돌봄공동체여야

 

 

박지현 전환마을협동조합 이사장



 

우리 사회에서 복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돌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은 높지 않다. 장기요양보험이나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있지만 당사자와 보호자가 이를 통해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절차를 거치고 지원을 받기까지 걸리는 공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강화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돌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위기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서울시 돌봄SOS센터 사업을 주목하라

 

이러한 현실에서 서울시가 돌봄SOS센터 사업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작년 5개구 시범 실시에 이어 올해 7월부터 8개구에 돌봄SOS센터를 추가로 열어 총 13개 자치구로 확대되었고 내년에는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범사업에서는 장애인과 65세 이상 어르신이 지원 대상이었는데 이번에는 만 50세 이상 중장년 가구가 지원 대상에 추가되었다. 비용 지원 대상도 기존 저소득층에서 중위소득 85% 이하 시민으로 확대되었다.

 

돌봄SOS센터는 이름 그대로 긴급한 돌봄이 필요할 때 이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동 주민센터 안에 설치되어있는 돌봄SOS센터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긴급하게 가사, 간병, 돌봄이 필요한 주민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로 전담인력이 구성되어 있다. 돌봄 매니저는 신청이 들어오면 대상 여부와 위기도를 판정하고 욕구를 파악하여 서비스 제공을 의뢰한다. 여기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안부 확인 및 정서 지원, 일시 재가 서비스, 간단한 집수리 등 주거편의, 병원이동 등 외출활동 지원, 식사지원 서비스 등 일상생활 전역에 걸쳐 있다.

 

 

도시락에 담긴 사회적, 공공적 가치들 

 

필자는 긴급돌봄 서비스 중 식사지원 서비스를 의뢰받아 수행하는 은평구 마을기업의 대표이다. 직접 음식을 만들고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전환마을협동조합이 올해 채식식당을 오픈하고 동시에 마을기업을 신청하여 돌봄서비스 사업에 참여하였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채식, 친환경, 로컬푸드, 비유전자변형(non-GMO) 식재료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이 단가 7800원(배송비·부가세 포함)으로 이용자가 흡족할 도시락을 만들어야 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스테인리스 찬기를 사용하기에 매번 도시락을 수거하여 설거지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어떨 때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이 충돌하거나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없을 때 불가피하게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공공의 가치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한다. 사회적 경제와 마을기업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도 단지 일자리 창출만이 아닐 것이다. 사업성 이외에도 공공성과 공동체성이 중요한 가치이다.

 

우리 조합은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소고기, 돼지고기 육류는 쓰지 않고 생선, 무항생제 달걀 등만을 사용한다. 화학조미료 역시 쓰지 않고 유기농 쌀과 지역 사회적기업에서 만드는 두부 등 국내산·친환경 식재료를 주로 사용해 도시락을 만든다. 이러면서 돌봄사업 예산이 마을기업도 도와주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 긴급돌봄 식사지원 서비스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고 직접 배달하는 전환마을협동조합 조합원들. ⓒ전환마을 협동조합

 

 

도시락을 통해 우리는 '만난다' 

 

복지와 생태적 가치는 상충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락에 기후위기를 가중시키는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항생제와 농약을 사용한 수입 농축산물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내년에 돌봄SOS센터 사업이 전 자치구로 확대되면 식사지원 서비스 요구도 증폭될 것이다. 과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대기업이 뛰어들 수도 있다. 만약 도시락을 만들 때 영양과 위생만이 기준이 된다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 먹는 사람, 전달하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는 생략되어버린다. 청년들과 1인가구 주민들이 오토바이로 배달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음식을 먹고 돌봄이 필요한 어른들이 대규모 푸드회사의 탑차가 배송해주는 일회용 플라스틱 음식을 먹을거라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하다. 

 

우리는 왜 직접 배달하는가? 물론 양질의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취지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당사자들의 상황과 필요를 직접 확인하고 관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5개월간 50여 명의 긴급돌봄 대상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몇 분을 제외하면 모두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계시다. 오래된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가 가장 많은 주거형태이다. 단독주택 지하 방도 있고 상가건물의 완전 지하실에도 거주하는 어르신이 있다. 심지어 화장실이 없는 집에 거주하시는 분도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는 첫날 대상자의 주소를 받고 골목을 다니며 집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나와 동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집을 찾아낸다. 도시락은 '배달'을 넘어 '만남'을 가능케 해주었다.

 

 

긴급돌봄 넘어 일상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 

 

도시락을 받는 분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도 좋지 않으시다. 많은 분들이 고령에 고혈압, 당뇨, 뇌경색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으며 혼자 사신다.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거나 치료 후 요양이 필요하신 분들도 계시다.

얼마 전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70대 남성 어르신은 우리를 만난 날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항암 중인데 괜찮으시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폐는 멀쩡하다는 것과 어차피 몇 달 못 산다는 것이었다.

 

위암 수술 후 자주 구토 증세를 일으켜 응급실행이 잦은 여성 어르신은 병원에 갈 때마다 사진을 전송하고 본인의 건강 상태를 문자로 보내온다. 어느 날은 쌀과 냉장고에 있는 냉동식품을 우리에게 가져가라고 몽땅 싸주신다. 이제 자기는 아무것도 못 먹는다며 말이다. 다행히 병원에 가서 재발이 안 되어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난 뒤에야 양배추김치를 좀 담가달라고 연락이 왔다. 

 

화장실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곰팡이로 뒤덮인 지하 방에 사는 어르신은 도시락을 가져다드리겠다고 전화했을 때, 필요 없다고 소리를 지르셨다. 돈 달라고 하는 거 모를 줄 아느냐면서…. 무료라고 한참을 설명하고 나서야 도시락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이 짠한 분들은 본인이 아프고 늙었음에도 장애인 자녀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여성 어르신들이다. 지나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배송이 늦어지는 일도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한가득이다. 

 

결국 이름이 긴급돌봄이라지만 이후 일상적 돌봄으로 연계되어야 할 분들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어느 가구의 사례를 보자. 파킨슨병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함께 사는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집이 있다. 딸이 부모님 식사를 챙겨드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 분들에게 식사지원 서비스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고, 집안에 돌봄을 제공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긴급하고 일상적 도움이 필요했지만 우리 협동조합이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 우리 지역에서 왕진 서비스를 하는 의료협동조합에 부탁했다. 이후 방문간호 서비스가 이어지고 이 가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긴급돌봄이 관계망을 통해 지속적인 마을돌봄으로 이어지는 사례이다.

 

 

복지국가, 이웃의 안부를 묻는 돌봄공동체여야 

 

몇 달간 돌봄이 긴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단순히 행정서비스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긴급돌봄 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이 분들을 만나고 식사지원 서비스를 해드리는 기간은 한두 달이다. 그 기간 동안 끼니를 챙겨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해에 다시 만날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결국 이웃들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이 촘촘히 만들어져야 한다. 지하 방에 사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돌봄매니저가 아니라 골목길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던 할머니들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지하 방에서 고독사하는 노인들이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존엄한 삶을 꿈 꿀 수 있겠는가? 예산은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하고 관계망을 통해 촘촘히 스며들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내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01510334595199?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Posted by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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